“27일 방일하는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마음이 무거워 도쿄행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교부 실무자는 25일 반 장관의 방일 전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일관계의 어두운 현주소를 잘 말해주는 언급이었다.
필수 불가결한 외교 행위를 제외한 정상외교 등 선택적인 외교를 중단한다는 지침은 일단 한일 관계의 냉각을 예고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양국관계가 마냥 대립적으로 갈 수는 없기 때문에 해빙의 단초를 모색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반 장관의 방일기간에 일본의 성의 표시가 없다면 대일 정무외교의 진전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한국에 제시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당국자의 말은 현재로서는 기대할 게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올 6월 한일 셔틀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추모시설 건립을 언급했던 고이즈미 총리로서는 반 장관에게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하지만 이것으로 한국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대신 내달 18, 19일의 부산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의례적으로 이루어질 한일 정상회담을 제외하고 올 연말과 내년 초의 셔틀 정상회담은 물 건너가게 된다. 또한 12월 중순 말레이시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도 양국 정상은 냉랭한 미소만을 교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일 외교지침이 장기간의 정상외교 단절로 귀결될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양측 모두에게 정상 외교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에 이어 한국마저 잃을 경우 동아시아 외교무대의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고, 한국도 북핵 문제와 북일 수교교섭 등에서 일본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한 외교관은 “올해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실패한 것은 물론 대중국 외교에서 낙제점을 받은 상태”라며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와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무성 장관으로서는 나름의 복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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