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요즘처럼 깊어 가는 가을 어느 날이다. 저녁마다 나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에 군불을 넣는다. 군불을 넣으며 무릎 위에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꼭 그렇게 생겼을 것 같은 사자의 머리만한 해바라기 다발을 올려놓고 해바라기 씨앗을 발려 먹는다.
그러다 마당가에 나서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그 노을 한가운데로 기러기의 한 편대가 날아간다. 학교에서 배운 ‘기러기’의 가사는 이렇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 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그런 달 밝은 밤은 아니지만, 꼭 그 노래의 풍경 속에 내가 있는 기분이다. 여름 내내 마루에 똥을 싸던 제비들은 나와 동생이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집을 비워버리고, 저녁마다 기러기들이 노을 속으로 날아왔다. 동생은 기러기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느냐고 물었다. 그곳을 모르는 나는 다시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마저 부른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너는 알고 있겠지. 기러기들이 살러 가는 곳.
누구에게나 그렇게 어린 시절 마음속으로 찍은 사진처럼 액자 속에 자신을 담아놓은 풍경 하나씩 가지고 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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