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샤오룽(李小龍)의 절권도를 모티프로 자신의 암울했던 소년기를 고백한 ‘말죽거리 잔혹사’의 감독 유하는 자신의 또래를 통칭해 ‘리샤오룽 세대’라 일컬었다. 내가 보건대 유하에게 리샤오룽은 자신(들)이 지나온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경험의 특별한 아이콘으로 기능 한다.
‘무슨 무슨 세대’란 말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과거화하고 전형화함으로써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방편이다. 그건 결과적으로 ‘성장’(이 말은 아직까지 내게 ‘일반화’와 동의어이다)과 관련한 자기증명으로 통용되거나 이후 삶에 대한 문화적 알리바이로 작용하게 된다.
나는 그런 식의 세대 분류법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이 근본적으로 기대고 있는 ‘희미한 옛 기억의 그림자’를 일종의 정신의 장애로 보는 경향까지 있다. 정신의 노스탤지어라는 게 한 인간의 내적 경험을 얼마나 풍족하게 하는 지에 대한 신뢰가 내게는 없다.
나는 지난 시간의 회한이나 연민을 곱씹고 앉아 있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엄밀하게 물질적인 현재성에 주목하는 걸 더 좋아한다.
‘이력서’화 된 개인의 역사보다는 자꾸만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현재의 불확실성과 예측 못할 스스로에 대한 전복성이 내겐 더 유혹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샤오룽 세대’에 속하지 않는 지금의 나는 오히려 ‘리샤오룽 주의자’에 가깝다고 뜬금 없이 고백한다.
리샤오룽 얘기를 꺼내기 위해 ‘리샤오룽 세대’를 걸고 넘어졌지만, 내게 리샤오룽은 영원한 미래의 인물이다. 또는, 현재의 내가 지향하는 삶의 한 전범으로써 가장 완벽에 가까운 모종의 이상적 육체이다.
‘리샤오룽 세대’와는 달리 내겐 리샤오룽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말로만 듣던 리샤오룽의 영화를 처음 본 건 중학생 시절 명절 특집으로 TV에서 틀어줬던 ‘용쟁호투’였다.
‘프로젝트 A' 등을 필두로 한 청룽(成龍)의 아크로바틱한 액션물이 인기를 끌 무렵이었는데, 시종일관 정신 사나운 유머와 낙천적인 해피엔드가 유쾌했던 청룽에 비하면 밥 먹을 때조차 눈에 힘을 주고 사방 적들의 동태를 살피며 ‘적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리샤오룽은 멋들어지긴 하되, 감히 친해지긴 어려운 교실 뒷자리의 외로운 ‘주먹 짱’ 같은 느낌이었다.
학창 시절 주먹 짱의 비호 아래 연애편지 대필 노릇이나 하며 덩달아 껄렁거렸던 나로선 리샤오룽의 그런 모습이 꽤나 익숙하고 매력적이었지만, 청룽 팬이었던 형이나 동네 친구들에게 날선 조각도로 대리석을 깎아놓은 듯한 웃통에 칼자국을 새긴 채 쌍절곤을 휘둘러 대는 이소룡은 ‘좋아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여겨졌던 듯하다.
“성룡과 이소룡이 맞붙어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이냐”는 둥의 ‘소년다운’ 논쟁 끝에 온 동네 아이들에게 판정패 한 이후 나는 오랫동안 리샤오룽을 잊고 있었다. 그 이후는 리샤오룽처럼 살기엔 힘이 딸리고 청룽처럼 살기엔 유머가 딸리는 웬만한 대한민국 남자들의 삶과 어슷비슷 피장파장이다.
그러다가 다시 리샤오룽을 만난 건 청춘이 남의 일로 여겨지며 불현듯 튀어나오려 하는 아랫배에 온 삶의 무게를 강퍅스레 우겨넣던 스물 아홉 살 무렵이었다.
육체적으로 속박된 자는 천식(喘息)과 분투하느라고 좀 더 델리케이트한 방법을 놓쳐버린다. 더욱이 지적으로 속박된 자는 이상(理想)과 외래취미(外來趣味)에 치우쳐서 능률이 결여되어 사물의 진실을 숙시(熟視)하는 것도 결여하고 만다. - 리샤오룽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배우로만 리샤오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시애틀의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별 주목거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늦은 자기보존 심리가 작동해 서점에서 각종 운동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가 리샤오룽을 ‘재발견’한 나 같은 ‘만성 천식환자’에게 그의 단순하고도 또렷한 아포리즘 들은 ‘번갯불에 맞은 듯한 충격’(질 들뢰즈가 펠릭스 가타리를 처음 알았을 때 쓴 표현이다)이나 진배없었다.
리샤오룽이 쓰고 무술동작을 설명하는 삽화까지 직접 그린 무술교본 ‘절권도’는 리샤오룽의 무술철학과 기술을 집대성해 놓은 그의 유일무이한 저작이다.
리샤오룽이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당시에는 ‘절권도의 길’이란 제목으로(‘말죽거리 잔혹사’에 구판본이 실제로 등장한다) 출간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조악한 디자인과 중구난방의 편집에 살짝 눈 감을 줄만 안다면 이 책은 단순한 무술교본을 넘어 (적어도 내겐) 들뢰즈와 비트겐슈타인이 꽂혀 있는 책장 B-1열에 함께 섞여 있어도 손색없을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절권도는 리샤오룽이 직접 창안한 무술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야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술이론과 태도를 내면화한 최배달이 오로지 실전 경험과 강자(强者)의 타도를 목적으로 극진 가라데를 만든 것처럼 리샤오룽은 중국의 쿵푸와 일본의 가라데, 태국의 킥복싱과 한국의 태권도, 그리고 서양의 복싱 등을 집대성하여 절권도를 개발했다. 그런 만큼 절권도는 어떤 형(形)에 사로잡힌 무술이 아니다.
동양에서 무술이 특정한 집단의 예와 절도와 정신을 표상하는 기예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오로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절권도는 계통 불분명한 잡기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샤오룽에게 무술은 어떤 집단의 도그마에 헌신하는 기예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삶을 추동하는 근원적 에너지인 동시에 현재의 충일함을 완성하는 삶의 실질적 내용이었다.
리샤오룽의 지상목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출한 재능과 문제의식을 꿰뚫어 특유한 삶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리샤오룽은 이렇게 말한다.
“표현은 형(形)의 연습에 의해서만 발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은 표현의 일부분이다. 보다 큰 표현이 보다 작은 표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작은 것이 보다 큰 것 속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형을 갖지 않음’은 ‘형을 갖는 것’에서 진화한다. ‘무형’(無形)은 보다 높은 수준의 개인적 표현이다.”
절권도의 궁극은 사물을 사물 자체, 그리고 그 사물에 반응하는 몸의 움직임과 힘을 움직임과 힘 자체에 몰두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선 사물을 사물 그대로 알아야 하고 자신을 자신 그대로 알아야 하는 깨달음이 선행된다. 그럼으로써 ‘무형’의 ‘형’이 잠정적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논리로써 정식화되거나 말로써 설명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리샤오룽에게 있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에게서 이탈하는 것을 뜻했다.
자기 자신을 고집하는 건 결국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낳고, 대상에 대한 집착은 두려움과 미망과 혼돈 속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건 싸움 꽤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얘기지만, 리샤오룽처럼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타인과 함께 행동하는 자기를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명징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드물다. 싸움의 궁극은 늘 그렇듯,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다.
자신 자신을 안다는 건 타인의 움직임과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랬을 때 싸움은 일차적인 적대심을 넘어 ‘마음의 노력’이 된다. 그러나 그건 오로지 싸움에 임하고 있을 그 당시에만 유일하고 절실할 뿐이다. 다시 리샤오룽을 인용한다.
“오늘 밤 나는 무엇인가 아주 새로운 것을 본다. 그 새로움은 마음에 의하여 경험으로 남는다. 그러나 내일 내가 그 감각, 그 즐거움을 다시 하고자 한다면 그 경험은 기계적이 되어버리고 그 표현은 결코 진실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럼 무엇이 진실일까? 그것은 사실을 즉시 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내일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을 믿지 않는 리샤오룽은 그러나 영원한 내일 속에나 가능한 잠재태로 존재한다. 리샤오룽은 나아간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아직도 내게는 영원히 멀다.
리샤오룽은 누구보다 현재에 충실한 미래의 육체이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전폭적이다. 나는 아직 제대로 싸워보지 못했다. 이런 나를 객관화한다는 건 현재에 대한 죄악이다. 적들아, 덤벼라. 내게는 아직도 싸움이 모자라다. 그런 만큼 나 스스로가 되기에도 모자라다, 꺄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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