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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멧돼지를 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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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멧돼지를 습격하라"

입력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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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지난 19일 또 서울에 나타났다.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지난 달엔 죽여서 버려버렸으니 이번엔 다르겠지. 부검이라도 제대로 하면 고향을 찾을 게야.” 조금 지나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잡아 죽였냐고 물어보니 익사했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멧돼지를 익사 시킬 수 있다니.

산(山ㆍ뫼 혹은 메)에 살아서 멧돼지라 불리지만 놈은 헤엄에 능하다. 뭍에 사는 네발짐승 가운데 단연 최고다. 비계가 두꺼워(3㎝ 정도) 저절로 물에 뜰 수 있어 그런지 모르나 수㎞의 강을 헤엄쳐 이동하고, 해협을 건너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마다가스카르섬까지 건너간 ‘물멧돼지’도 있다. 경남 통영시 외딴 섬 욕지도에도 멧돼지가 있다. 육지(저산리ㆍ猪山里)에서 뱃길로 30㎞정도 떨어진 섬이다. 그 길에는 해류도 있고, 중간에 섬도 많으니 징검다리 건너듯 했을 것이다.

가축으로 인간과 공존하는 대표적 짐승이 개와 돼지다. 영리하기 때문이다. 돼지는 개보다 IQ가 높다. 멧돼지는 똘똘치 못한 새끼는 어미가 젖을 물리지 않아 도태 시킨다.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다 큰 수컷은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송진을 찾아 지혈하고 염증을 치료하며, 시냇물이나 새벽바위에 상처를 대고 열을 식힌다. 그들의 집은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안에서는 사방팔방이 훤히 틔어 요새와 같다.

무슨 연유인지, 어디서 왔는지, 서울의 멧돼지는 ‘연구 대상’이다. 지난달 한강을 3차례나 건넜던 한 놈은 결국 한강둔치에서 도살됐다. 사냥개 10마리, 의경 1개 중대, 한강순찰대에 일반 사냥꾼들까지 동원됐다. 멧돼지살코기 진공팩까지 시판되는 나라에서 “불쌍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아니다. 저돌적(猪突的)으로 덤벼서 그랬다지만, 마취총 한방 맞히지 못한 그 작전은 도대체 뭔가. 부검도 않고 ‘쓰레기로 폐기처분 하겠다’는 발상은 또 뭔가(서울시는 나중에 생각을 바꿔 교육용 박제로 만들기로 했다). 19일의 멧돼지는 더욱 그렇다. 한강에 뛰어든 놈을 순찰대와 소방대의 보트가 1시간 이상 몰고 다니다, 카우보이가 소를 잡듯 밧줄을 걸어 상륙을 막은 끝에 익사 시켰다 한다. 몸뚱이는 바로 폐기물 처리됐다.

멧돼지는 예로부터 해수(害獸)다. 고구마를 비롯해 벼 보리 옥수수 등 농작물을 마구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가족단위로 생활하고 한번에 30㎞ 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므로 인근 농가의 피해는 크고도 넓다. 사냥은 금지돼 있다. 주민들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잡아죽일 뿐이다. 심심찮게 서울에 멧돼지가 출현하는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생태를 연구하느라 산 속을 탐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사건들은 ‘인간과 멧돼지’를 탐구하기 위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오늘(24일) 또 다시 서울 창경궁(옛 창경원)에 멧돼지가 등장했다. 그 동안 경험을 토대로 1시간 정도 추격해 이번엔 공기총으로 사살해 금세 쓰레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잡아죽인 멧돼지에 대해 제대로 된 부검이나 관찰조차 하지 않는다니. 난동을 제압하겠다는 전투적 일념 외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가. 서울 도심을 침범한 죄를 물어 때려 죽이고, 물먹여 죽이고 손만 씻으면 그만인가. 여기는 멧돼지가 살 수 없는 곳인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인가. 박제된 사회다.

지난 달의 멧돼지는 박제로 변신 중이다. 두번째 세번깨 멧돼지는 폐기물로 사라졌다. 서울시는 “(지난달 멧돼지의 경우) 쓰레기로 간주해 매립해 버릴 예정이었으나 교육용 가치가 있어 박제로 만든다”고 했다. 무슨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 흔한 위원회 하나쯤 없애고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직속으로 ‘멧돼지 중앙 대책 위원회’라도 만들자

정병진 부국장 겸 사회부장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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