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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름다운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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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름다운 킬러

입력
2005.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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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가족들과 강원도로 단풍을 보러 갔다. 영동고속도로 속사 인터체인지에서 나가 31번 지방도로를 따라 운두령을 넘고 홍천 창촌서 56번 도로를 타고 구룡령을 넘는 코스를 잡았다.

쌀쌀한 듯하면서도 상쾌한 바람, 간간이 흰구름에 가렸다가 따사롭게 내려 쪼이는 햇볕, 가을걷이 끝난 비탈밭에 군데군데 인디언 천막처럼 갈무리된 옥수수단. 강원도 산간마을의 한가로운 가을풍경이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정작 산록의 단풍은 기대한 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구룡령 넘어 양양 쪽 내리막길로 접어들기까지는 그랬다.

■ 고갯길 산자락의 남쪽과 북쪽의 단풍이 확연히 달랐다. 남쪽 단풍은 칙칙하고 단조로웠는데 북쪽은 울긋불긋 색조의 조화가 빼어났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갯길 남쪽과 북쪽 산록의 나무 종류와 구성이 달랐던 것이다. 운두령과 구룡령의 남쪽 양지바른 산록은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 수종을 이루고 있는데 생기 없는 붉은 색조 일색인데다 산 정상 부근에는 벌써 낙엽이 져 앙상한 겨울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반면 고개 너머 북쪽 산록은 느릅, 자작, 서어, 산벚, 산뽕, 붉나무, 단풍나무류 등이 노랗고 빨갛고 검붉어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골짜기 전체가 오색실로 수놓은 한 폭의 현란한 자수였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 공생하면서 저토록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는 나무들의 지혜가 부러웠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쇳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넘치지 않는가.

■ 우리가 찬탄하는 단풍나무의 단풍이 실은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독성물질의 화학전쟁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외신에 보도됐다. ‘아름다운 킬러’라고 불리는 물질은 단풍잎에 붉은 색을 띠게 하는 안토시안 성분이다.

식물들이 특유의 화학물질로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他感· Allelopathy)작용이라고 하는데 단풍나무는 안토시안이 포함된 낙엽을 떨어뜨려 다른 식물의 발아를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식물의 이 같은 화학전은 자기 영역을 지키는 방어수단을 넘어 온 산을 점령하는 공격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때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을 뒤덮었던 아메리칸 밤나무는 타감작용을 하는 대표적 식물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시아에서 건너간 병충해로 한 순간에 멸종되고 말았다. 과도한 자기확장,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은 욕심 많은 나무의 비참한 말로였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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