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빈국인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23일 폐막했다. 이번 도서전은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성과를 밑거름 삼아 한국문학과 문화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세계에 알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빈국 행사를 결산하고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좌담회를 현지 도서전 한국관에서 가졌다.
황지우 주빈국 조직위 총감독,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 송영만 대한출판문화협회 국제담당 상무와 독일 출판사 발슈타인의 문학담당 편집장 토르스텐 아렌트, 펜드라곤의 귄터 부트쿠스 대표가 참석했다.
발슈타인은 지난 달 김지하 시집을 출간했고, 내년에 황지우, 고은 시집을 차례로 낼 계획이다. 펜드라곤은 10년 전부터 한국 작가들의 번역작품을 독일에 소개하고 있다.
토르스텐 아렌트=한국이 주빈국으로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양한 행사를 펼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다. 방문객도 많았다. 어제 니콜라이교회에서 열린 김지하 행사를 다녀왔는데 서양의 기독교 전통과 한국의 한을 절묘하게 결합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귄터 부트쿠스많은 행사들을 이곳 언론들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송영만=독일인들이 개막공연 ‘책을 위한 진연’에 문화충격까지 받았다고 하더라. 우리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관에도 저명한 독일 출판사 편집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내년, 그 후년에는 상담도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황지우=당초 보여주려 했던 한국문화의 결과 깊이를 주빈국관 등에서 모두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지적했듯 재작년 주빈국이던 러시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모든 전시의 형식과 내용에서 ‘크리에이티브’(독창성)는 인상적으로 남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다만 번역된 책의 양과 질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숙제로 안고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나오는 성과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서 진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의지다. 조직위는 해산되지만 번역원, 출협, 문화관광부, 시민단체 등 범국민적인 지원과 관심, 투자가 필요하다.
아렌트=많은 언론이 주빈국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독일 대중들이 한국문화나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내년쯤 되면 관심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 서점에 가면 한국책을 볼 수 있는데, 내년에도 과연 그럴지는 지금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에 달렸다. 앞으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독일에 한국작가들을 불러서 문학행사를 갖는 것이다.
문학행사는 독자들이 작가를 직접 대면함으로써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하고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읽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 작가의 책을 한 출판사에서 지속해서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독일의 전통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문학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그러면 다시 서점에 책이 깔리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부트쿠스=한국문학을 출판한 독일 출판사의 전통이 깊지 않다. 펜드라곤만 하더라도 한국문학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것이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주빈국 행사 이전을 10년의 시기로 본다면, 앞으로는 또 다른 10년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주빈국 행사를 통해 한국 문학의 인지도가 상당히 향상됐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당연히 서점도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행사가 열리면서 관련된 여러사람들이 한국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됐고, 그것이 또 하나의 독자층을 형성했다.
펜드라곤의 경우 독일 전역 200~250개 서점에서 “5종의 도서 3부씩을 보내달라” “10종의 책을 3부씩 보내달라”는 주문을 계속 받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내년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렌트=기대와 달리 한국은 노벨문학상과 거리가 멀어졌다. 노벨상 심사위원들의 고려사항 중 하나가 상업성인데, 한국작가들은 아직 그 점에서 인정을 못 받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작가들이 계속 몇 년 동안 후보군에 들었는데, 낙관적인 추측이지만 거론되는 2, 3명 중 한 명이 2년 내에는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일 언론은 한 작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문학 전반의 분위기에 관심을 둔다. 주빈국 행사를 하면서 한국문학은 당연히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고, 그 인지도 상승은 아마 올해, 내년 스톡홀름으로 전해질 것이다.
황=노벨문학상은 호들갑을 떤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연한 자세로 해야 한다. 그 이전에 한국문학 내부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되돌아보고, 더 노력해 좋은 작품을 내는 창작 열의가 중요하다.
또 좋은 작품이 잘 번역돼 해외에 알려지고 있느냐, 우리가 번역을 잘하고 있느냐 하는 등의 내부 역량도 따져야 한다. 결과에 너무 연연해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나라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
부트쿠스=한국 작가가 늦어도 10년 안에 노벨상을 받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출판인으로서 내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좋은 한국의 문학을 독일에 소개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 책을 얼마나 빨리 독일 독자들에게 알려줄 것인가이다.
송=주빈국 행사를 잘 치르고 나서 그 나라의 문화적 아우라가 형성되면 2, 3년 안에 노벨상을 받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공식함수 관계는 아니지만 1990년 일본의 주빈국 행사에서 오에 겐자부로와 귄터 그라스의 대담이 있었는데 94년 오에가 노벨상을 받았다. 99년에는 헝가리가 주빈국 행사를 잘 치르고 2000년에 임레 케르테스가 상을 받았다.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독일에서 일으킨 강진을 여진으로 가져가야 한다. 프랑스 파리 도서전 조직위가 최근 2007년 주빈국으로 한국을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2008년에는 국제출판협회(IPA) 총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세계 유수 출판사의 대표와 편집장 2,000명이 서울과 파주에 모인다. 세계 최대 어린이책 박람회인 볼로냐 도서전 주빈국 초대도 받아 2009년에 할 생각이다. 분위기가 5년간 잘 잡힌다.
진형준=노벨상은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얻는 작은 결실인데, 이게 마치 목표인 듯이 된 모양새가 없지 않다.
노벨상을 갖고 야단법석을 떨 때마다 “그럼 노벨상 받고 나면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 안 할 거냐”고 묻는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문학은 객관적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 해외로 많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문화, 우리 정신에 외국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작품들이 나간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 작품을 해외에 알린다는 것 뿐 아니라, 쓰는 이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는 의미도 있다.
독자가 한국인으로 국한됐을 때와, 번역돼서 외국인들이 읽는다고 했을 때와는 쓰는 자세가 다를 것이다. 번역은 작가의 의식을 국제화하고 세계인으로서 보편적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키우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선해서 좋은 것을 뽑아 보낸다는 자세보다는, 빨리 많이 보내서 익숙하게 만드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송=진=번역원은 한국문화 홍보를 위해 두 가지 방향을 잡고 있다. 우선 한국문학 번역, 문학교류 행사를 선택적,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출판산업의 해외진출을 중점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마케팅과 문화홍보의 두 방향으로 진행한다. 마케팅협의체를 구성해 에이전트를 육성하고, 해외 출판사를 뚫어 한국 책을 번역 출판되도록 하는 에이전트들을 포상할 것이다.
또 수출탑을 세워주듯 해외 진출을 많이 한 출판사들에게 상을 줄 것이다. 그와 함께 해외로 나가는 것이 국내 출판의 살길이라는 인식을 전파하겠다.
프랑크푸르트=글ㆍ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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