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수사지휘권 파동으로 사퇴한 김종빈 검찰총장 후임에 정상명 대검차장을 내정했다. 헌정사상 유례 없는 사태에 이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개혁을 강조, 외부 기용설까지 나돈 것을 생각하면 온건한 선택으로 비친다. 정 대검차장이 능력과 신망에 개혁성까지 갖췄다는 설명이나, 안정과 개혁을 함께 배려한 인선이란 평가도 무리 없게 들린다.
그러나 불과 반년 전 김종빈 총장을 기용할 때도 권력 안팎의 설명과 해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대로 특기할 것은 김 총장이 호남 출신이어서 법무장관 등 다른 권력기관장과 겹친다는 논란이 고작이다.
정 차장의 경우 대통령과 가까운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사실이 부각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요소들이 인선의 핵심일 수 있으나, 검찰총장 직무의 본질과 동떨어지는 천박한 논란이기도 하다.
이는 곧 이번 사태가 애초 검찰총장 개인의 개혁성 등과 본질적으로 무관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앞으로도 불가피할 검찰권 행사를 둘러싼 정치권력과 검찰의 갈등을 곧장 인적 제도적 개혁 논란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본다.
개혁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권력의 지휘감독권이 충돌할 때 그 경계를 올바로 구분하는 것은 법치의 본질에 관한 훨씬 중대한 과제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검찰권 독립을 부르짖던 사회가 정치권력의 민주적 통제 명분에 물색없이 동조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칫 법과 제도를 통한 개혁보다 정치적 중립을 먼저 훼손할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 검찰총장 인선도 이런 안목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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