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쟁론'과 '맥아더동상 철거'를 주장한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 문제를 놓고 지난 일주일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천정배 법무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검찰 독립 논란은 끝내 정치적 이념논쟁으로 비화했다. 각 정파의 이해득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무거운 분열의 앙금만 남겼다.
이 논쟁을 놓고 한국일보 논설위원들 사이에도 여러 날 많은 의견이 나오고 또 엇갈렸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행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문제이고, 천 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는 검찰의 독립성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기본권이 국가권력의 침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강 교수를 구속하지 않아야한다는 법무장관의 지휘는 이론적으로 이상적이다. 더구나 수사지휘권 발동은 법이 부여한 법무장관의 권한이다.
●적절치 않은 수사지휘권 발동
그런데 우리는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적법하지만 '적절하지 않다' 는 입장을 취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민주적 질서를 통한 사회적 안정을 원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법적 절차에 따라 구속수사 여부가 가려지고 재판과정에서 법리 논쟁이 이뤄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강 교수 파문의 근저에는 국가보안법 개폐라는 정치적 문제가 걸려 있지만, 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재판과정을 통해 법 적용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토론이 있을 수 있고, 종국적으로는 정치권에서 그 개폐를 논쟁하고 협상하는 게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순리라고 보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국민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에 공감한다기보다 강 교수 사건의 특수성을 볼 때 법무장관의 정치적 개입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여름 강 교수의 통일전쟁론이 보도되었을 때 역사적으로 편향되고 합리적 검증이 결여된 그의 주장을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놓을 가치가 없으며, 이 같은 극소수의 주장은 사회의 구석에 묻어두어야 한다는 게 우리 논설위원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생리는 이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고, 강 교수는 맥아더동상 철거 시위에 나서는 등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드러냈다.
어느새 그의 언행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처럼 단순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인터넷 매체에서 그가 쓴 글을 읽어보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국가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뜻이 배어 있음을 느낀다. 아마 그 때문에 많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의 견해에는 반대한다는 선을 긋는 모양이다.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강 교수 파문 후 장관의 연설, 방송토론, 신문컬럼에서 이 표현이 쏟아지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중심적 기본권이다. 그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함 아쉬워
만약 강 교수가 무죄판결을 받는다면 그가 부정하고 싶은 체제로부터 가장 완벽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어쨌든 강 교수 같은 사람이 극소수로 제한될 때 우리 민주주의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나, 일정한 선을 넘는 사람이 많아질 때 건강을 유지?수 없을 것이다.
중세 종교의 도그마에서 벗어난 계몽주의 시대에는 자유의 욕구가 넘쳐 나던 시대였다. 그러나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때,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그 후 250여년에 걸친 유럽과 미국이 치른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강정구 교수 파문은 검찰 독립과 중립, 보안법 개폐, 사상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우리 사회의 숙제로 다시 부각시켰다. 하지만 사회적 통제가 가능하게 성숙한 토론과 틀을 유지하면서 풀어나갈 수는 없는 일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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