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절한 일상, 세상은 공허하고, 나른한 하품처럼 발기마저 열의 없는 나날…. 당신이 수긍하든 않든, 자살을 위한 ‘나’의 알리바이는 충분하다.
‘나’는 꽤 괜찮은 샐러리맨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나는 매일 마치 선물용 포장 상자처럼 넥타이를 두른다.”(20쪽)
카펫에 소소한 흠만 생겨도 통째 교체하는 고급 아파트에 산다. 매일 갱신되는, 전혀 낡지도 늙지도 않는 공간. “흐르는 시간과 무관하게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환경 속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 역시 항상 제자리 걸음만 할 뿐이다.”(45쪽)
미래를 이해하고 싶다면 대기 구성 요소에 1%의 ‘압력(스트레스)’만 추가하면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 드디어 완전 범죄의 시대가 도래했다. 어디를 보아도 굶주리고, 자살하고, 병들고, 학살당한 사람들 천지다. 하지만 그 어떤 암살범의 손에도 무기는 들려 있지 않다.”
젊은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완벽한 하루’는 이런 ‘나’의 하루, 달리 말해 이 완벽한 물질문명의 세계에 대한 분노의 이야기다. 익사 직전의 표류자에게 너무 많은 구명튜브를 던져줘 갈피를 못 잡고 숨지게 하는 세상(79쪽), 뭔가에 관심 두기엔 사람들이, 덧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75쪽), 몸은 주고받아도 입 열고 말을 나누진 않을 것 같은 남녀들(67쪽). “문명이라는 것은 공포심을 길들이고 잘 키워나가는 것이다.”(97쪽)
그는 이성의 폐해를 비튼 소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는가’(작가정신)로, 자신만의 독특한 유머와 지적 냉소, 차가운 풍자의 문학을 선뵌 바 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반복하는 기괴한 자살 충동, 감정이라는 ‘곤충’의 분류법, 엘리베이터에서의 일주일 휴가 등 공상의 퍼레이드는 우울을 블랙코미디로 희석하며 역설적인 여유를 선물한다. 그것은 웃음의 낯선 맥락에서 경험하는 여유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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