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이 시리아 고위층과 레바논 내 친 시리아 세력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혐의가 한층 굳어졌다.
더욱이 암살의 배후로 시리아의 2인자이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매형인 아세프 샤우카트 군 정보부 부사령관이 거명돼 중동정세에 파란이 예상된다. 이를 계기로 시리아에 대한 미국 주도의 포위망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레바논은 수도 베이루트 등에 배치된 군을 증강하는 등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4개월 동안 사건을 조사해온 유엔 조사위원회는 20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2월 14일 일어난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은 최고위직 시리아 정보관리의 승인과 레바논 정보기관의 공모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던 일"이라고 밝혔다.
54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암살은 몇 개월 동안 치밀하게 준비됐으며 상당한 능력을 가진 정교한 조직에 의해 저질러 졌다"며 "하리리 전 총리는 전화도청을 통해 감시를 당했고 암살 당하기 직전 통신안테나가 전파방해를 받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암살 3주 전에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폭탄을 실은 차량 한 대가 국경을 넘었으며 암살 하루 전에는 이 차량이 암살 장소인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옮겨 졌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밝혔다. 이 사건을 조사한 독일 출신의 조사 책임관 데틀레브 메흘리스는 "1차적으로 정치적 동기로 암살이 일어났을지라도 부패, 돈세탁 등도 관련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 언론들은 곧바로 군사정보기관 책임자인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매형인 아세프 샤우카트를 배후로 지목했다. 뉴욕타임스는 21일 한 외교소식통을 인용, "샤우카트가 중요한 용의자"라면서 "그는 권력 2인자일 뿐 아니라 알 아사드 대통령의 승계자"라고 보도했다.
또 블룸버그 통신은 "보고서에 기재된 시리아 관리 5명과 함께 알 아사드 대통령의 형제인 마헤르와 매형 샤우카트가 암살을 계획했다"고 전했다. 시리아는 이날 "유엔 보고서는 비전문적이며 잘못됐다"며 "100% 정치적일 뿐"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지난해 10월 사임한 친 프랑스계인 하리리 전 총리는 시리아의 레바논 철군을 주장해 시리아와 갈등을 빚어 왔다.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보고서를 신중히 검토한 뒤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미 시리아 제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쟁점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P통신은 "이 보고서에서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이 암살 직전 친시리아계 조직의 저명인사인 그의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친시리아계인 라후드 대통령에게도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의 반시리아계 국회의원 2명은 라후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지만 라후드 대통령측은 "통화하지 않았다"며 일축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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