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적대적 인수합병(M&A) 경쟁이 과열돼 기업간 갈등으로까지 비화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실판정을 받았던 덩치 큰 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정상화하자 이들 기업을 인수하려는 국내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인수 전쟁의 대상이 된 기업은 국내 최대 물류업체인 대한통운. 조선ㆍ해운ㆍ물류회사인 STX그룹이 6일 대한통운 지분 21.02%를 전격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되자 금호아시아나그룹도 14일 지분을 추가 매입해 14.7%를 확보하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여기에다 미래의 성장 축을 물류에서 찾고 있는 GS, CJ, 롯데그룹마저 대한통운 사냥에 나설 경우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쎄븐마운틴그룹의 지주회사인 세양선박도 적대적 M&A의 대상이다. 최평규 S&T 중공업(옛 통일중공업) 회장과 최 회장이 최대 주주인 S&TC(옛 삼영)가 최근 세양선박 주식 2,005만주(18.14%)을 매입, 쎄븐마운틴해운(20.45%)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최 회장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쎄븐마운틴그룹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상증자와 해외전환사채(CB) 발행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양선박을 둘러싼 지분 확보경쟁은
쎄븐마운틴그룹의 임병석 회장이 최평규 회장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할 정도로 양 사의 자존심이 걸린 감정싸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
1,000만 명 가까운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LG카드는 올해 M&A 시장의 최대어로 주목 받고 있다. 우리은행과 농협, 신한지주 등은 LG카드를 인수할 경우 카드업계는 물론 개인 금융부문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인수경쟁에 본격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쌍용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도 새 주인을 찾기 위한 M&A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3,000억원 대의 이익이 예상되는 현대건설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조기 졸업이 추진되면서 경영 정상화에 대한 세부 방안을 마련 중이다. 최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KAMCO)가 내년 상반기까지 매각을 완료할 예정인 대우건설은 올해 3,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이 예상될 정도로 알짜 기업이어서 대주건설, 웅진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M&A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증시의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M&A 시장이 머니 게임 장으로 변질될 경우 기업의 투자여력을 갉아 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뜩이나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나쁜 상태에서 엉뚱한 곳에 역량을 쏟아 붓다 보면 자칫 기업 에너지가 소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워크아웃 기업들의 매각은 시장 논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이나 산업 구조 등을 고려해서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환은행의 최대 주주인 론스타의 사례에서 보듯 외국 투기 자본만 배 불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M&A 시장에 나오는 기업들의 덩치가 워낙 커서 누가 새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재계에 한바탕 소용돌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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