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른바 재벌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역사적 불가피성과 현실적 유용성을 새롭게 해석해 눈길을 끈다.
김 장관의 개인적 역정과 소신, 여권 내에서의 위치와 역할 등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강퍅한 운동권의 논리나 거친 시민단체의 주장에서 재벌은 곧 ‘악의 축’이었고 그것이 이 정부의 재벌개혁 코드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의 초청강연 원고에 있던 재벌 관련 내용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장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김 장관의 생각은 되새겨볼 만하다.
그에 따르면 재벌은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의 총화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졌지만 지배구조는 세계적으로 가장 취약하다. 편법적인 부의 세습, 형제간 재산 다툼, 병역기피 등 오너가의 도덕적 해이 등이 이어진다면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의 최근 행태를 보면 국민의 자부심을 이용해 국민을 깔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런 비판과 반성 위에서 김 장관은 재벌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재평가했다. “재벌은 자본주의 후발국인 한국이 이른 시일 내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국가와 국민이 만든 역사적 전략적 작품이다.
단순히 재벌가의 것이 아니다. 그런 만큼 재벌의 막연한 부정과 해체는 경제발전사의 단절을 의미한다. 재벌을 해체하고도 한국이 국제경쟁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사가들은 김 장관의 속내를 입맛대로 해석하며 재벌 비판이니 옹호니 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그 같은 흑백논리는 논점을 흐릴 뿐이다. 김 장관의 진의는 재벌의 탄생 배경과 공과에 대한 엄밀한 사회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매서운 질책과 따뜻한 격려가 이뤄져야 한다는데 있다.
포퓰리즘이나 조직이기주의를 모두 배제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법고창신(法古創新)적 관점에서 재벌문제에 접근한 김 장관의 시도가 새 지평을 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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