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재차 만난 삼성그룹 계열사 CEO는 기사에 ‘삼성’이라는 말은 넣지 말아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삼성이 ‘죽일 놈의 집단’처럼 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의의 발언도 오해 받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 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은 한달 넘게 자리를 비우고 있다. 미국에 가있다고 한다. 투자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출국한 후 신병 요양을 하고 있다는데, 참 길기도 하다.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유죄판결, 금산법 개정안, 지난 대선 때 정치자금 문제에 더해 이 회장 자신은 국회 출석요구까지 받은 시점이다.
검찰수사지휘권 파동으로 삼성 뉴스가 잠잠해진 듯 하지만 다시 기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삼성’이란 테마는 우리 정치 경제 사회에 항상 대기 중인 폭발적 소재가 됐다.
일단 삼성이 어떤 문제가 되면 그야말로 벌떼 같이 달려들고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최근 한 방송은 삼성이 수십년전에 사들인 한 문화재가 민간이 보유해서는 안 되는 국보급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무튼 삼성이 걸려있으면 무엇이든 얘기거리가 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유죄판결 이후 각 언론사 동료들과 친목 모임이 있었다. 여기서도 삼성은 화제에서 빠지지 않았다. 언론사의 한 간부가 말했다. “삼성이 어떻게 대응할까. 이건희 회장이 사재 일부라도 토해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간부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막을 수 있으면 삼성도 당장 그렇게 할 걸. 그러다가는 삼성을 통째로 국가에 헌납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지”
그렇다. 기업의 문제를 법과 제도가 아니라 정서와 심리로 해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참여정부 하에서의 한 흐름이다. 국민들이 기업을 아끼고 재벌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지만 정치사회적 환경은 그렇지 않다. 수사지휘권 문제가 종국에는 이념공방과 색깔론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미우나 고우나 삼성은 대한민국 경제의 대표주자이며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기업이다.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잭 웰치 전 GE사 회장은 최근 방한 강연에서 우리 사회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성공한 기업만이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다. 지고 있는 기업은 구조조정을 하기도 벅차다. 성공한 기업만이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만큼 한국은 형평성을 위해 성장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중국이 맹추격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1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말했다.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는 없다. 그러나 반재벌 정서는 다른 문제다.” 대통령은 반재벌 정서도 없다고 말해야 한다. 재벌이든 기업이든 법규를 벗어난 행동에 대해서만 정확하게 행정 집행을 하면 된다.
세계의 경제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삼성이 우리 경제의 5분1을 생산하는 거대 그룹이라고 하지만 이게 10년 갈지, 20년 갈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삼성그룹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것은 삼성전자 정도다. 만약 혁명적인 IT제품이 어느 나라에선가 나오면 삼성전자는 일거에 간다.
우리가 다 함께 나눌 파이를 더 키우기 위해 기업은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존재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총수가 자의반 타의반 외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국적 상황이다. 외국기업은 국내에서 거둔 이익을 외국으로 가져가지만 우리 기업들은 어찌됐든 우리 땅에 있다.
송태권 경제부장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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