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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본분과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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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본분과 처신

입력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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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은 신분과 직무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말한다. 처신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이다. 이런 사전의 풀이대로라면 본분에 충실한 것이 곧 올바른 처신이다. 그러나 일상의 쓰임새는 다르다. 본분에는 흔히 도덕적 요구가 덧붙는다. 이에 비해 처신은 이런저런 처세의 지혜와 타협한 운신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바르지 못한 세상이 말의 원래 뜻까지 바꾼다.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 난무한 말 가운데, 청와대가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를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나무란 것이 가장 귀에 거슬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 온갖 말 같지 않은 주장과 편협한 논리를 용인하더라도, 검사로 30년 복무한 이의 처신을 간단히 매도하는 것에 비애를 느꼈다. 강 교수의 주장은 우리 사회가 숭상하는 미국처럼 사상의 자유 차원에서 존중하거나 그냥 비웃어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을 둘러싼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이견이 맞서는 상황에서는 기본권과 정체성과 독재 유산 등을 논쟁하기에 앞서 총장과 장관의 책무와 권한, 뭉뚱그려 본분을 따지는 것이 민주와 법치에 가장 충실한 접근일 수 있다.

■ 검찰 문제를 오래 다루면서도 김종빈 총장이 검찰 독립에 소신이 남다른 인물이란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총장에 기용될 때 정치권력의 여러 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국회와의 협의 절차인 청문회를 거쳐 독립된 준사법기관의 우두머리가 된 검찰총장은 정부의 일원이자 대통령의 참모인 장관보다 정통성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총장과 장관의 의견이 충돌할 때 검찰권 독립이나 장관의 지휘권만 논할게 아니라 누가 헌법적 정통성이 큰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 이렇게 볼 때 이번 논란에서 정작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이다. 스스로 임명한 검찰총장과 장관의 의견이 부딪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서 조정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순리다. 그가 좋아하는 유럽에서 이런 분쟁이 있으면, 연정이든 아니든 세 사람이 서둘러 회동해 논란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례없는 사태에 개입하지 않은 것을 거꾸로 자랑하다가, 총장이 사표를 내자 그게 잘못이라고 욕하며 선뜻 수리한 것은 어이없다. 온갖 거창한 논리에 앞서 본분과 처신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 이 사회에 가장 절실하다고 본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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