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새책,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새책,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입력
2005.10.21 00:00
0 0

허수경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이다.

그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면이 차단된 거울이 아닌 시간의 거울, 거울의 안팎이 소통하는 거울이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가까운 과거와 인류의 먼 과거, 그리고 오늘을 본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게 쓰여진 듯하다.

독일생활 14년, 그는 거기서 고대근동고고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근동은 이집트서부터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다. 최초의 문명들이 꽃피었던, 달리 말해 ‘청동의 시간’이 일찍부터 집요하게 전개됐던 곳이다. 그 차가운 구리합금의 인류는 권력에 각성한 존재들이었다.

그 시간은 계급 지배 국가의 시간, 살육과 약탈, 전쟁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가자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시간, 그 뿌리이자 가장 높은 가지에 매달린 잎의 시간이다. “아이들 자라는 시간 청동으로 된 시간/ 차가운 시간 속 뜨겁게 자라는 군인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땅속에서 감자는/ 아직 감자의 시간을 사네// 다행이군요,/ 땅속에서 땅사과가 아직도 열리는 것은/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땀을 역청처럼 흘리네“(‘물 좀 가져다주어요’)

차가운 살육의 논리로 뜨겁게 달궈진 군인이 돼가는 아이들의 시간이 생명의 시간을 익히는 아이러니의 현실이다. 그들은 목 마르다. “물 좀 가져다 주어요/ 물은 별보다 멀리 있으므로/ 별보다 먼 곳에 도달해서/ 물을 마시기에는/ 아이들의 다리는 아직 작아요”(같은 시) 그 아이들은 “손발 없는 속수무책의 신들이 지키는 담장 아래 살”아 “단 한 번도 죄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아이들의 염소처럼 그렇게” “나이 어려 죽은” 아이들이다.(‘해는 우리를 향하여’)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 이를테면 발굴은 중근동의 뙤약볕 아래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의 시에서 해는 말리고 죽이는 청동의 이미지로 산재해있다. 그 해는 “정격포즈로 하늘을 점령”해서는 “이 발굴지를 덥석 집어 제 식민지를 건설”한다.

“해는 이곳에 아찔한 정적을 경작하고/ 햇빛은 자유 데모보다 더 강렬하게 폐허의 심장을 움켜”쥐고는 “혹독하게 폐허의 등허리를 누”른다. 이름 없는 집단의 무덤 발굴현장, “아직 흙에는 물기가 남아 있어/ 비닐봉지에 그대들을 담으면 송송 물이 맺힙니다/ …폐허에 남은 이는 그대가 든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주며/ 그대의 마지막 물기를 말리고 있습니다”(‘새벽 발굴’)

시인은 “몸에 남은 물의 기억을 다 태우는 당신과/ 당신 물의 기억이 다 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쩔 것인가”(‘불을 들여다보다’) 탄식하면서도, 그 죽음의 시간들에 대해 애처롭도록 애절하게 위로한다.

“얘야, 울지 마라/ 쪼그리고 앉아 울지 마라/ 다, 지나간단다 저 뭉개지는 꽃잎에서/ 짓이겨 더 진한 향을 보렴/ 눈 감고 향을 보렴”(‘엄마’) 또, 담장 너머로 고요히 뻗어나는 넝쿨 새 잎을 담장이 모른 척 하듯 “새로 생겨날 때도/ 혹은 사라져갈 때도/ 그 어머니인 지구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그런 존재인 어머니// 고요하게 손을 뻗는 새끼들을 그냥 모른 체하세요”(‘고요하게 손을 뻗다’) 라 속삭이기도 한다.

어릴 적 대구국 끓이는 저녁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라도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던 시인은 지금 ‘그 먼 데’에 가서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로 대구국을 끓이고 저녁밥을 ‘도닥도닥’ 지으며 산다.

그러다 눈에 가을 단풍만 들어도 고향(경남 진주)의 강을 그리며 “검은 이불 속을 뒤척이며/ 서리서리 퍼런 물,/퍼런 물속 순한 물이/ 되는 불 만난 듯”(‘가을 물 가을 불’) 반색한다.

그가 대상을 직접 대면하지않고 거울을 통해 본 것은 그것들이 너무 먼 시공간의 것들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아프고 아려서였는지 모른다.

그는 시집 말미에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살기/살아남기’의 당위를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비관적인 세계 전망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나지막한 희망, 그 희망을 (이 시집을 통해) 보낸다”고 적었다.

▲ 달이 걸어오는 밤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내 속이 전구알이 달린

크리스마스 무렵의 전나무같이 환해지고

그 전나무 밑에는

암소 한 마리

나는 암소를 이끌고 해변으로 간다

그 해변에 전구를 단 전나무처럼 앉아

다시 달을 바라보면

오 오,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고

저 혼자 붉어져 있는데, 통증도 없이 살 수는 없잖아,

다시 그 달을 꿀꺽 삼키면

암소는 달과 함께 내 속으로 들어간다

온 세상을 다 먹일 젖을 생산할 것처럼

통증이 오고 통증은 빛 같다 그 빛은 아스피린 가루 같다

이렇게 기쁜 적이 없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