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계곡가 언덕에 자리잡은 웨딩공간 ‘아트 브라이덜’의 너른 정원은 화사한 색과 선으로 채워졌다.
한복 디자이너 김희수(58)씨가 오랜만에 마련한 ‘한복을 위한 그림 세계’ 발표회장이다. 캐나다 노르웨이, 브라질 등의 주한대사 부인들과 임권택 감독의 부인인 채령, 축구선수 이천수, 아나운서 진양혜,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 김소형씨 등과 미스코리아들이 모델로 나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 보였다.
김희수씨는 지난 18년 동안 미스코리아 대회의 민속의상을 전담해오면서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미스 인터내셔널 등 각종 국제미인대회에서 무려 11회에 걸쳐 베스트 드레서상과 민족 의상상 등을 수상한 한복분야의 대표급 디자이너.
그래도 주로 무대 뒤 탈의실에서 모델들의 옷을 챙겨주고 매무새를 정리해온 때문인지 ‘작품’이 아닌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매우 쑥스러워 했다.
“이제 외국인들도 한복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한복의 느낌을 살려 만든 파격적인 이브닝 드레스나 웨딩 드레스까지 변형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결혼한 김씨는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가사일에만 매달려있다가 어느날 문득 자기 만의 뭔가 다른 세계를 갖고 싶어졌다.
미대 재학시절부터 염색에 관심이 있던 그는 아무런 기본지식도 없이 그저 감각 하나만 믿고 아이들이 잠든 밤마다 무작정 염색작업에 매달렸다. 빛깔이 은근하게 우러나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바느질 하나 제대로 못했던 그는 염색에 재미가 붙자 한복 디자인에까지 욕심을 냈다. 발에 불이 나도록 유명 한복 집을 돌아다니며 디자인을 배웠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자신이 붙자 제 발로 미스코리아대회 주최측을 찾아가 협찬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잡은 기회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젊은 시절이 끔찍하기만 해요. 일과 가정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위해 악착같이 살았거든요.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은 자유롭게 일만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발표회에는 국제대회 때 수상한 한복 6벌과, 나염부터 그림까지 혼신을 다해 제작한 최근작 55벌이 선보였다.
빨간색에 그려진 모란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는 전통디자인 작품과, 흰색에 산수풍광을 수묵화로 표현한 이브닝 드레스 등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의 한복들은 전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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