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이 소비를 늘리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저소득층 소득이 늘어나는 이른바 ‘물 흐름’(Trickle-down) 효과가 2001년 이후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부유층이 늘어난 소득보다 훨씬 많은 돈을 유학 자녀에게 송금하거나 여행 경비, 수입품 구입 등으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보다는 빈곤층에 대한 재정지출을 강화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물 흐름’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1996년 이후 올해 2ㆍ4분기까지 상위 소득 20% 계층과 하위 소득 20% 계층의 소비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2001년 이후 상위 계층의 소비 증가가 하위 계층의 소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이전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상위 계층이 소비를 100원 늘리면, 3개월 후 하위 계층 소비도 60원 늘어났다.
그러나 2001년 이후에는 상위 계층의 100원 소비 증가에 따른 3개월 후 하위 계층의 소비 증가 폭이 22원에 머물렀다. 또 96~2000년에는 상위 계층의 100원 소비 증가가 6개월 뒤에도 하위 계층의 소비를 22원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2001년 이후에는 오히려 28원의 소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측정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고소득층 소비가 하위 계층으로 확산되는 효과가 급격히 약화한 것은 부유층을 중심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의 소비지출액 가운데 수입품을 구매하거나 해외로 나가 쓰는 돈의 비중이 10%를 넘어섰다. 국내 소비지출 가운데 수입품에 대한 지출비중은 95년 5.4%에서 2000년 5.8%로 올라간 데 이어 2004년에는 8.0%로 뛰어 올랐다.
또 해외여행 경비와 유학경비 지출 등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5년 1.7%에서 2000년 2.0%로 높아진 데 이어 지난해는 2.9%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개인부분에서 해외로 지급된 규모도 95년 87억 달러에서, 2000년 114억 달러를 기록한 뒤 2004년에는 206억 달러로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득 계층별 해외소비에 대한 통계자료가 없지만, 해외소비의 대부분은 상위소득 20% 계층에 집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부유층의 해외소비 급증이 계층간 소득확산 효과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소비 규모가 크지 않은 2001년 이전에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부유층 소비가 저소득층 소득으로 연결됐으나, 2001년 이후에는 높은 곳(상류층)에서 방류된 물이 중간에 해외로 증발돼 낮은 곳으로 흘러 드는 양이 절대적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한편 ‘물 흐름’ 효과가 급감함에 따라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대안도 감세보다는 재정정책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재경부 김용민 세제실장은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한계소비성향이 낮으므로 감세로 인해 개인의 가처분 소득은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소비증가로 이어져 경기진작에 기여할 만큼의 효과를 낼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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