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미국에 보내놓고 6년간 홀로 지내던 한 50대 가장이 숨진 채 5일만에 발견됐다. 평소에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고 활달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 건축회사 설계팀장 K(53)씨는 자녀 교육을 위해 1999년 재산을 처분해 부인과 아들 딸을 미국에 이민시켰다. 이후 자신은 한국에서 번 수입 중 일부를 미국으로 송금하며 혼자 생활해 왔다. 3년 전부터는 서울 서초구 역삼동에 원룸을 얻어 혼자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고혈압이 있어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평소 호방한 성격으로 술을 즐기며 회사동료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대학생인 아이들도 방학 때마다 아빠를 찾아왔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K씨의 한 회사동료는 “팀장님이 평소에 직원들과 자주 회식도 가졌지만 가족이야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K씨의 친구 김모(53)씨는 “얼마 전에 만났을 때 부인과 이혼했다는 말을 했었는데…”라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K씨는 12일 저녁 혼자 소주 1병을 집에서 마시다 쓰러져 사망했다. 소주병엔 반 정도의 소주가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않은 방엔 먼지가 구석구석 쌓여 있었다. 업무에 필요했던 설계도면, 지로용지 등이 방바닥에 널려 있었다. 책과 옷가지들도 흩어져 있었고, 옷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옷장도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러나 5일간 그를 아무도 찾지 않았다. 주말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 없이 K씨가 출근을 않자 17일 동료직원 김모(51)씨가 집을 찾아가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그의 사망이 알려졌다. 김씨는 휴일인 15일에도 K씨 집을 찾아갔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문앞에서 되돌아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K씨의 부검을 맡은 의사는 “K씨 사망시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K씨는 휴대폰에 특정 친인척 외에 전화번호도 거의 저장해 두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K씨의 사인을 지병인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로 보고 정확한 사인과 사망시각을 조사하고 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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