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강정구 교수의 돌출 발언이 일파만파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파동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골치가 아프고 또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한다.
조금은 별난 지식인의 거친 발언 하나 때문에 이 정도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청와대와 같은 정치권력이 크게 움직여야 하고, 여야 정당은 마치 국가대사가 걸린 양 긴장과 대립구도로 빠져야 한단 말인가. 언론이 연일 대서특별, 특별 토론을 편집하면서 논의의 수위가 공연히 국가 정체성과 위헌 논쟁, 이념대립까지 가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검찰 독립이니 문민 통제니 하며 나름대로 의미를 달아 보지만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태가 이미 뜻하지 않게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근본적인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의견을 사회 내에서 적절히 걸러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민주적 숙의 시스템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강 교수의 발언은 전혀 새로운 얘기도 아니고 학문적 근거가 약하며, 다른 사람의 다른 주장을 고려한 흔적이 없어 지적이지 못하고 투박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적 공론장을 운영하고 있었더라면 그 정도의 발언은 아예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설사 약간의 파문이 있다 하더라도 몇 차례 토론을 거치면 근거를 못 찾고 금방 사그라졌을 것이다.
설혹 강 교수의 발언이 국가 안보에 현존하는 위험을 가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면,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는 한 검찰은 불구속 수사를 통해 진상을 드러내 보이고, 죄가 있다면 처벌했으면 그만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 대립되는 의견과 주장의 표출, 합리적인 토론, 의견의 차이 인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숙의의 공간의 존재이다. 이때 민주적인 토론 공간을 운영하는 데는 최소한의 원칙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이 투박하고 어설프고 때로는 너무 엉뚱하여 때려주고 싶어도 일단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으로 인정해 주는 시민적 예의(Civility),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이 아무리 대립되고 갈등적이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여도 일단은 나와 다른 의견으로 수용해 주는 관용(Tolerance)이 있어야 한다.
시민적 예의와 관용의 원칙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언론 공간이다. 민주주의 언론은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경합하는 공론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교수의 발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언론, 특히 일부 보수언론은 스스로 민주적 공론 공간을 닫아 버렸다.
언론은 돌출적이고 투박하고 위험한 강 교수의 발언을 일단 의견으로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시민적 예의를 갖추는 대신, 적을 이롭게 하는 발언이라고 단정하고 강 교수를 공격하고, 처벌해 달라고 고발하고 있다.
언론은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강 교수가 소속된 대학의 학생들조차 강 교수의 의견을 있을 수 있는 다른 의견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언론이 먼저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론의 공론장 역할은 어느새 실종되고 정치적 이념적 편가르기 싸움에서 언론은 마치 전위부대 또는 선전도구를 자처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불필요하게 소모전 양상이 된 강정구 교수 파동에서 검찰이나 법무부, 청와대,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입장과 문제점은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한나라당의 행동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적 근거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이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라면 강 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먼저 인정해야 할 것 같볕? 오히려 억압에 나서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학습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모두들 말로 할 것을 서로 때리고 싸우고 할퀴면서 이렇게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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