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우루과이라운드협상으로 닭, 오리고기 시장이 완전 개방될 당시보다 더 참담합니다.”
19일 대한양계협회, 한국계육협회 등 7개 단체가 공동으로 보내온 ‘조류독감 과잉보도자제 요청’ 성명에 실린 이 문구는 농가들의 애 타는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연일 이어지는 조류독감 보도에 닭, 오리고기는 물론 달걀 소비까지 급감하고 있으니 농가로서는 생계까지 걸린 문제다.
조류독감 공포 확산의 파편을 맞은 또 다른 ‘희생자’는 철새들이다. 정부가 조류독감 발생예보를 발령하면서 배포한 홍보 전단에는 ‘감염경로’라는 제목 아래 ‘북방철새→텃새→가금류’의 도식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이쯤 되면 농민들이 왜 엽총을 들고 철새를 쫓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취재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철새를 ‘바이러스 덩어리’로 보는 듯한 태도는 부적절할 뿐 아니라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공포 분위기만 확산시키지 말고 확증된 예방법을 집중 홍보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3년 국내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도 철새도래지는 오히려 안전했고 철새를 통한 조류독감 전염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평생 야생조류를 연구해온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이우신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철새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가빠졌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철새도래지를 쌍안경으로 살피는 사진을 보며 너무 속상했습니다. 마치 겨울 철새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을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철새가 원인일 ‘가능성’은 열어둔다 치더라도 이들을 조류독감 원흉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신영 경제부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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