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역사, 특히 기억의 영역에 내장된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소설로 만나는 일은 자칫 싱겁기 쉽다. 그것은 사실과 허구의 거리, 이전(移轉)과 창작의 괴리에 기인하는 몰입에의 본능적 저항 탓일 수도 있고, 고정된 서사에 얽매인 작가적 상상력의 장애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시사(時事)의 범주에 드는 어떤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다루는 일은 작가로서도 상당한 모험이며, 그래서 문학의 ‘느린 대응’이 미덕일 수 있는 것이다.
재독 작가 강유일씨의 장편 ‘피아노 소나타 1987’(민음사 발행)은 그 위험한 장애를 넘어 아름답게 착지한, 드문 소설로 기억될 만하다. 그는 87년의 ‘KAL858기 피격사건’을 모티프로, 한 ‘혁명전사’의 굴절된 삶을, 이념적 유토피아의 폭력성을, 예술의 위대한 힘과 생명의 고결함을 한 편의 서사시로 그려내고 있다.
서사는 한 중년의 테러리스트와 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두 갈래 서사로 진행된다.
동독과 구소련에서 교육 받은 30년 경력의 북조선 폭파 전문가 ‘한세류’. 그에게 혁명은 신의 과업이다. “궁극의 정토인 저 지상낙원…, 배를 젓는 우리 인민들은 오디세이의 신하들처럼 귀에 밀랍을 넣어 청력을 막”고 “우리를 유혹하는 계급의 적들과 다른 진영의 사이렌들을 물리친다.”(101쪽) 그리고 수령은 신이다. “무려 40만 개의 폭탄이 평양에 투하됐을 때 수령은 이미 우리의 신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39쪽)
하지만 스스로의 이념을 신앙이라고 인식하는 그 냉소는 미세한 신앙균열의 고백일 것이다. 오랜 해외생활, 대의에 대한 막연한 회의와 혁명행위에의 갈등…. “장총과 월계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그 지독하게 어두운 터널 속을 나는 리볼버를 들고… 이념의 사병이 되어….”(80쪽) ‘조국’은 작전명 ‘유토피아’ 지령과 함께 눈부신 백색 무취의 폭약을 쥐어준다. 그는 불면의 나날을 보내지만…. 승객 115명이 숨졌고, 그 역시 위조 여권이 발각돼 체포된다.
사고기 안에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안누항이 있었다. 금단의 땅인 프라하 드보르자크홀 신년음악회 무대에 초청될 만큼 뛰어난 연주자.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지만 “28년의 기쁨과 비명이 들어있던 보물창고였던”(371쪽) 오른 팔을 잃는다.
서사는 리볼버와 피아노, 혁명의 폭발음과 생명의 선율을 오가며 매혹적인 균형을 이룬다.
“작전이 수행되는 순간부터 혁명은 당과 수령의 법칙이 아니라 혁명 자체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압도적이고 숙명적인 그 힘과 속도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럴 때 혁명은 생물이다.”(341쪽)
“파가니니의 남국적 신열이 라흐마니노프의 시베리아적인 한랭한 신음으로 변해가면서 끼처오는 그 심미적 이식이 나는 떨리도록 좋았다.”(77쪽)
작가는 치밀하고 서정적인 문체와 깊은 사유의 단호함으로 비밀 공작원으로서의 고뇌와 사랑, 16살에 자살한 생모의 한(恨)과 아비의 치료비를 얻고자 10살에 환관으로 팔려가야 했던 양부의 삶과 역사에 대한 관조, 노년의 회한 등을 그림으로써 이분법적 서사의 단조로움을 넉넉히 상쇄한다.
작전 전모를 털어놓고 남과 북 모두의 적이 된 이 혁명테러리스트는 법정진술을 통해 “혁명의 종착역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결국 지배였”(473쪽)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자살은 속죄가 아닌 탈(脫)지배, 자유에의 도약이었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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