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주제로 시사평론을 많이 쓰다 보니 적지 않게 경험하게 되는 일이 항의성 전화와 협박이다. 그런데 2년 전에 특이한 항의전화를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원로 진보 인사가 이른 아침 전화를 해 “손 교수, 당신 미쳤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 날 아침 바로 이 칼럼(2003년 9월9일자)에서 쓴 “조갑제를 위한 변명” 이란 글을 보고 화가 나 전화를 한 것이다.
당시 월간조선 대표였던 조갑제씨는 노무현 정부를 친북 비호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저항은 물리력을 동원한 저항도 정당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 사실상 노무현 정부에 대한 무장 저항을 선동해 논란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진보 교수라는 사람이 이 같은 극우 논객을 위한 변명을 칼럼으로 써주다니 제 정신이냐는 항의 전화였다.
사실 문제의 칼럼은 친 노 대통령 계열의 한 시민단체가 조씨를 내란선동죄와 국가보안법상의 국가변란선동죄로 고발한 것에 대해 아무리 조씨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고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위험한 주장이지만 이를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조씨를 고발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2년전 조씨 처벌반대 칼럼
어쨌든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아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내 주장이 틀린 것이 없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항의 전화를 했던 원로 인사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제목만 보고 화가 나 항의 전화를 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내 주장이 맞는 것 같다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강정구 교수의 소위 반미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특히 강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 수사 의견에 대해 천정배 법무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표를 냄으로써 사태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조갑제씨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서 그를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 내용이 급진적인 주장이냐 아니면 극우적인 주장이냐와 상관없이 모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며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자유로운 논쟁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우파들은 조씨의 주장에 손뼉을 치며 조씨를 처벌하려는 시도에 분노하면서도 강 교수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법적 처벌을 주장하고 있다. 또 조씨를 고발했던 한 시민단체처럼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 중 일부는 강 교수와 같은 주장의 처벌에는 반대하면서도 조씨의 주장은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모두 이중 잣대로써 잘못된 것이다.
지휘권 파동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번 사태에는 검찰의 독립성이라는 문제와 올바른 사법적 관행의 확립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어 논쟁이 가능하다. 즉,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위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구속 수사를 하는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면도 있다.
●처벌하면 언젠가 부메랑
그러나 정작 주목할 것은 천 장관이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우리의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만큼 강 교수를 수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수사하되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위험이 없는 만큼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즉, 천 장관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비겁하다면 비겁한 절충적인 지시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온 나라가 요동을 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강조하건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껴?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의 주장을 틀렸다며 억압하고 처벌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나의 주장도 틀렸다는 이름 아래 억압당하고 처벌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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