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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강교수에 대한 실망과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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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강교수에 대한 실망과 변명

입력
2005.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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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감동적인 책이 있다. 미국인 헬렌 니어링이 남편 스코트와 일군 소박하고도 장엄한 생애를 회상하는 산문집이다. 이 부부는 50권이 넘는 책을 함께, 혹은 따로, 쓴 저술가이자 억센 농부였고, 예술가이자 사회 운동가였다. 귀농 안내서 같은 그들의 저서 ‘조화로운 삶’ 역시 국내 스테디셀러가 되어 있다.

스코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직에서 쫓겨나고, 다시 톨레도 대학에서도 해직 당한 학자였다. 그는 ‘거대한 광기’ 라는 책으로 미국정부와 1차 세계대전을 비판한 후 기소 당했으나 연방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신 그는 사회나 정계ㆍ학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추방 당하고 이혼한 45세의 이 빈털터리는 20년 연하의 헬렌을 만나, 새롭고 조화로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 검약한 생활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강연회와 저술활동으로 자신의 굽힐 수 없는 정치적 이상을 전파했다. 그가 1910년대에 쓴 비망록이다.

●시대와 불화한 스코트 니어링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사교춤과 야회복으로 대표되는 생활을 포기하겠다. 사회복지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는 일에 헌신하겠다. 노동으로 생계를 세우고,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겠다. 계속 배우고 익혀,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하도록 하겠다…>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1983년 만 100세를 채우고 고요히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는 신념과 이상에 충실했다. 생전이나 사후에 많은 이들이 이 ‘실천하는 이상주의자’의 생애를 기린 것은 그가 20세기 미국인의 한 정신적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에는 톨스토이와 간디, 숲의 철학자 헨리 소로, 자연주의 시인 월트 휘트먼 등의 전통이 흐른다.

스코트의 생애를 길게 얘기한 것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학문적 발언과 좌파적 성향을 놓고 논란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는 6ㆍ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며, 생명을 박탈당한 400만 명에게 미국은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그는 적화통일도 허용하는 통일지상주의자일 수도 있으나, 그 주장은 대부분 극단적이며 사실(史實)과도 멀어 보인다.

설령 통일전쟁이라고 치더라도,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5년 만에 동족 간에 참혹한 전쟁을 일으켜서야 될 일인가? 그의 발언이 미래의 통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북한의 궁핍상이 말해주고 있다.

그의 학문적 태도가 보다 보편적ㆍ객관적이었으면 한다. 반미 발언과는 달리 그의 장남은 미국 법률회사에 근무하고, 차남은 카투사로 복무했다는 사실 또한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다. 참고로, 스코트는 사회주의적 신념대로 살면서 전처의 아들이 보수세력의 일원이 되자 등지고 살았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의 원칙

강 교수의 주장이 독선적이고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인정되어야 한다. 학문적 견해는 학문적 주장에 의해 반박되어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강 교수에게 배운 학생에게 기업채용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의 상공회의소 간부의 발언도 상식 이하다.

급기야 검찰은 강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사할 방침이었으나,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하라는 지휘권을 발동했다고 해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 경우를 위한 이론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이다. 강 교수 발언이 체제전복과 직결될 정도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가에 의해 구속ㆍ불구속 기소 여부는 물론, 유ㆍ무죄 판결도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공산당 활동과 관련해서 발전돼온 이 원칙은 문명사회의 보편적 학설과 기준으로 정착돼 있다. 자유와 인권은 두텁게 보호하고, 죄를 묻는 것은 엄격해야 하는 것이 문명사회이기 때문이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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