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을 장려해야 할 시대는 지났다.” “저축은 여전히 장려돼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25일 열리는 올해 ‘저축의 날’ 행사를 역대 최소규모로 치루기로 하면서, 공공부문과 금융권의 저축기피 현상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저축의 날 행사에서 저축유공자 표창을 받는 사람은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0명에 불과하다. 저축유공자 표창은 2000년 426명, 2002년 412명, 지난해 186명 등으로 해마다 축소돼왔다.
군악대와 합창단도 녹음 테이프로 대체됐다. 경기 회복을 위해 소비 진작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근검절약을 장려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은 관계자는 “2003년에 저축의 날을 폐지하는 방안을 재정경제부와 논의했으나, 폐지 대신 규모를 계속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돼지저금통과 적금통장을 만들어 학교에 돌리고, 저축장려 백일장을 개최하던 시중은행들의 행사도 이미 올스톱했다. 오히려 동전을 가져 오면 받지 않는 게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코 묻은 돈을 받아 봐야 손해라는 계산 탓이다.
정부와 한은, 금융권의 논리는 ‘절약의 역설’로 집약된다. 국민들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면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수요 부족으로 기업들의 생산과 고용이 줄어 국민소득 감소를 초래하기 때문에 지금의 저축 증대가 오히려 미래의 저축 감소로 귀결된다는 얘기이다.
한은 관계자는 “과거 투자재원이 모자랄 때는 저축이 최고의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소비를 진작해야 선순환이 가능한 경제구조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이를 만큼, 현재 성장률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는 소비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절약의 역설을 논하기에는 가계의 재무구조가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비 진작이 당장의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의 역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적정 수준의 가계 재무구조를 유지해야 소비의 기반도 확보되는데, 가계 부채조정이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며 “지금의 과도한 소비는 오히려 장기적인 소비회복을 억누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3년 이후 계속되는 소비 부진은 2000~2002년 신용카드 남발에 따른 소비붐이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소비로 수입이 급증, 천문학적 경상수지 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적정수준의 저축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노후보장에 미치지 못하고 고용도 불안한 상태에서 국민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을 늘리는 것은 고령화시대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견해도 많다.
연금제도 등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소비 장려’와 ‘저축 기피’로 대응할 경우 성장률은 높아져도 중산층 이하 가계는 궁핍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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