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은 7월 초순에 벌써 빨간 열매를 맺습니다. 그때 다른 식물들은 서로 자라려고 난리가 날 때이지요. 산삼은 아옹다옹하지 않습니다. 뿌리로 먼저 돌아가는 산삼을 통해 겸허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홍대(63) 전 법제처장이 평생의 취미생활인 산삼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한국의 산삼(김영사)’을 펴냈다. 현재 경북 영주시 동양대 부총장으로 재직중인 그는 “30여 년을 산삼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산삼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약재였습니다. 산삼을 알기 위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때로는 직접 산에 오르면서 연구했습니다.”
그는 ‘동의보감’ 등 수많은 고서와 현대에 발표된 문헌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고 그렇게 얻은 방대한 지식을 548쪽의 책에 담아냈다.
제10회 행정고시를 통해 관계에 입문해 2000년 법제처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30여 년간 정통 관료의 길을 걸어온 그가 산삼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향 덕분이었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에서 태어난 그는 산삼에 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다. 그는 고향을 떠나서도 방학 때나 휴가 때면 귀향해서 산삼을 캐러 다녔다. 물론 도시 생활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효과 만점이었다.
“봉화는 송이와 산삼이 유명한 청정 지역입니다. 해발 1,200m의 문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그림 같은 곳이지요. 그래서 심마니들과 친하게 지내며 숱한 사연들을 들었습니다. 청량산 수십 길 벼랑 끝에 핀 산삼 열매를 보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해 고생한 이야기, 산삼을 훔쳐먹은 동네 청년의 몸에서 며칠 간 산삼 향기가 나더라는 이야기…. 산삼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면 온몸의 때가 씻겨지는 듯한 청량감을 느겼습니다.”
그는 고향 집에 심마니들이 살도록 하고 밭도 가꾸게 했다. 또 산삼을 구입해 씨를 받고 심어 수천 뿌리를 키웠다. 산삼을 많이 먹고 자란 그의 장남은 지금까지 감기 한번 안 걸렸다고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등 중국 서적에도 산삼 꽃 색깔이 붉은 것으로 기록돼있는데 사실은 흰색입니다. 흰 꽃이 순간적으로 피었다 지고 열매 끝에 오래 남는 암술머리의 색깔이 붉은 데서 오는 착각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또 산삼의 잎에 대해 전문가들도 첫 해 한 잎, 다음해 세 잎이 되고 그 다음해 다섯 잎이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산삼은 처음부터 모두 세 잎입니다.”
그는 사라져가는 한국 산삼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소망과 위기감 때문에 책을 냈다고 했다. 중국산은 연하고 씹으면 금세 물이 되며 향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삼은 40분을 씹어도 질길 만큼 조직이 촘촘하며 향기가 대단히 진하다.
단 중국산은 2년만 지나도 연필보다 굵고 모양이 좋은 반면 우리의 천종(天種ㆍ자연에서 발아돼 자란 천연 산삼)은 20년 자라도 이쑤시개만 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식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산삼”이라면서 “모두 다 산삼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