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분열을 통해 증식한다. 나뉘어지는 과정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한다. 그리고 유기체는 세포분열로 생존 생장, 확대 발전한다. 분열은 생명의 존재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기체로서의 사회는 오랜 역사에서 끊임 없는 분열의 과정을 거쳐 다원화 다양화하고, 또 연이어 복잡다기한 진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해 세포가 왕성한 자기 증식에 성공해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라면 문제는 다를 것이다.
■몸 안에서 나쁜 세균, 바이러스가 정상 세포를 능가하는 활동을 하게 되는 현상이 바로 병이다. 현대 의학은 아직 암 세포의 증식을 다스리지 못하고, 인체로 전염된다는 변형 조류 독감 바이러스로 세계적 비상이 걸려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을 말하는 것은 좋은 분열과 나쁜 분열에 대한 얘기와 같다.
사회의 분열 상도 그럴 것이다. 나뉘어 논쟁하고 다투면서 이념과 가치와 체제를 발전시켜 온 게 인류의 역사다. 그러나 여기에도 좋은 분열과 나쁜 분열이 달리 있을 수 있다.
■참여 정부의 논란 중 초기부터 계속되는 것이 분열의 문제다. 상충하는 가치, 진화하는 시대조류의 맥락에서 발전적 분열로 관리되지 않으면 사회는 큰 상처를 입는다.
흔히들 말하듯 ‘성장통(痛)’으로 통제와 관리가 가능한 현상이면 통증이 가시면서 ‘성장’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겪는 분열이 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게 문제다. 경제와 계층의 양극화, 이념과 관점의 극단화에 대해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사회적 병리다.
■강정구 교수 문제로 앓는 분열이 국가 정체성, 정권의 색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교수 신분의 한 개인에 대한 구속ㆍ불구속의 문제가 이렇게 확대되는 사태를 원점에서 따져 보자니 ‘원점의 원점’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말의 홍수 속에서 굳이 한 가지만 짚자면 “검찰이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청와대의 논리는 정치권력과 사법 사이 독립과 중립의 문제를 위험하게 건드린다.
오히려 선출된 권력의 오ㆍ남용을 막고 제한하자는 장치가 제도와 체제, 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선출 권력의 정당성은 포퓰리즘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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