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수 할 때가 좋다’라고 하죠. 요샌 그 말을 진짜 실감하고 있어요.” 14일 오전 경기 용인시 마북리 숲속에 위치한 농구단 숙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 허재(40) KCC감독을 만났다. 창원 LG와의 시범경기를 마치고 전날 새벽에 돌아와 피곤기가 가시지 않은 허 감독은 농구 얘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허통’(허재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현역 시절 특유의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지난 5개월간의 초보 감독 생활과 그만의 농구 색깔, 올 시즌 각오, 그리고 항상 그를 설레게 하는 아들의 농구 이야기까지…
먼저 시범경기 얘기부터 물었다. “2경기를 치렀지만 많은 것을 배웠죠. 선수나 벤치나 기선 제압이 중요하고 타이밍(선수교체)이 진짜 중요하더군요.” ‘농구9단’으로 불리던 그가 겸손을 떨었다. “현역 때 내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벤치에 서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어요.” 부산KTF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벤치에 앉아 조용히 미소만 짓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선수들이 잘하는 데 감독이 흥분할 것 없잖아요.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저도 큰 소리도 치고 흥분하지 않겠어요. 40년 살아온 성격이 어디 가겠어요”라며 껄껄 웃었다.
허재만의 농구가 궁금했다. “아직 애매해요. KCC가 전혀 바뀐 것이 없고 아직 초년생이라 나만의 농구, 허재만의 농구를 말하긴 아직 이릅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단 한가지 팀워크와 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선수시절 기술을 물론이고 체력에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그는 체력 강화를 위해 뱀을 고아 먹었단다. 경기를 뛰고 나면 셔츠에 노란 액이 묻어날 정도였다고…. 지금은 뱀을 먹지 않는다는 허 감독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습 땐 죽기 살기로 하라고 주문하고 큰 소리도 치고 야단도 쳐요. 하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선수들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며 ‘믿음의 농구’를 강조했다.
허재하면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술 광고에 나올 정도니 말이다. 사고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죠. 아마추어 땐 술 많이 먹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올 정도였어요. 하지만 과장된 부분이 많아요”라고 호소했다. “술 한번 먹은 것이 나중엔 ‘제는 1주일 내내 술 먹더라’로 와전돼 억울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젠 술 먹어도 1,2잔 이예요. 그래도 취하더라고요. 솔직히 선수 땐 술 먹고 한 구석에 숨어있으면 됐는데 지금이야 그럴 수 있나요. 술 먹고 얘들 앞에 나서기가 부끄럽더라구요.”
농구에 관심이 많은 아들 웅(12ㆍ성남 매송초6년)의 이야기로 이어지자 “아직 결정된 건 없다. 진짜 웅이가 농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사실 운동을 안시키려 했는데 그놈이 자꾸 농구를 하고 싶데요. 어려서부터 아빠가 농구하는 모습을 봐선지 농구가 최고인줄 알아요”라며 흥을 냈다. 허 감독은 내년 아들을 모교인 용산중 농구부에 넣기 위해 학교 인근으로 이사할 것을 고려중이다.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 농구를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올 시즌 목표는 일단 6강입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4강, 챔프전 우승도 노려보고 싶습니다.” 21일 개막되는 2005~06 프로농구를 바라보는 허 감독의 포부다. 선수로 대성한 그가 대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농구계의 징크스를 깨고 감독으로서도 활짝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희정 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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