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단호했다.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박 대표는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대한민국 정체성’을 말할 때 특히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박 대표는 “정권의 심장부에서 나라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체성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노 대통령의 집권 이후 송두율 교수 파동, 맥아더 장군 동상철거, 강정구 교수 사태 등 일련의 사건에 비추어 볼 때 현 정권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의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정권에 대한 이 같은 문제제기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곧바로 치고 나왔듯이 색깔론 시비를 부를 것이고, 이는 전례를 감안할 때 그리 유리한 게임으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주자인 박 대표에게는 상당한 모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박 대표가 대여 이념 전면전을 택한 데 대해선 소신론, 정치주도권 잡기 등 분석이 제기된다.
박 대표 주변 인사들은 “원칙론자인 박 대표가 현 정권의 이념적 수준이 국가체제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하다고 인식했다”며 소신에 충실한 행보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박 대표가 지난해 국보법 개폐 논란의 와중에 적지않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경투쟁을 이끈 것을 상기시켰다.
다른 쪽에선 10ㆍ26 재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선택,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의 급부상에 따른 당내 대선구도의 변화를 막기 위한 방책이라는 관측들도 나오고 있다.
현재 당내 분위기는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이다. 이날 청와대가 박 대표의 대통령 사과요구 등을 일축하고 오히려 ‘유신 망령’,‘극우적 냉전체제 부활’ 이라고 박 대표를 원색 비난하자 당내엔 “당장 장외투쟁에 돌입하자”는 강경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에서 청와대에 대해 “노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해선 단 한마디 말도 못하고 과거를 가지고 싸잡아 끌어내리려는 옹색하고 비겁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재선 의원은 “얼마 전까지 이념에 차이가 없다며 연정을 하자고 추파를 던지더니, 야당이 비판을 한다고 막말을 해대는 이 정권에 대해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싸움을 앞으로 어떻게 끌어갈지가 박 대표에겐 과제다. 천 장관에 대한 해임결의안 제출은 의석 분포상 부결이 뻔해 함부로 꺼내기 어렵고, 내각총사퇴 요구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장외투쟁은 몇 번은 효과적일 수 있으나, 요즘 세태에 역풍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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