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발 물러서 있던 연구자들도 논쟁 가세
17일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와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각각 ‘생명과학 연구자 윤리헌장 선포식’과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생명윤리 세미나’를 개최했다.
줄기세포연구가 급진전하고 윤리문제를 피할 방법도 강구되고 있으나 윤리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뒷전에 물러나 있던 연구자들이 윤리 논쟁의 복판에 뛰어들고, 보다 실질적이고 절차적인 윤리문제로 구체화하는 등 윤리논쟁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가 1년 준비 끝에 과학계 최초로 윤리헌장을 제정한 것도 이 같은 윤리 논쟁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학회 회장인 박상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생명과학의 성과도 크지만 과학자가 자칫 잊어버릴 수 있는 윤리 문제를 유념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헌장을 마련했다”며 “1~2년간 구체적 행동강령을 마련, 관련 연구자가 지침으로 삼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장은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인식하고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1항부터 총 10항에 걸쳐 연구자가 지녀야 할 윤리의식 뿐 아니라 실험 대상인 동물 사람 사회 생태계와의 관계설정을 포함, 절차적 윤리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피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동의를 얻는다”(5항)는 항목이 그렇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가 네이처 지에 실린 2004~5년 이후 추상적 생명존중 논쟁보다 난자 기증을 둘러싼 절차적 윤리문제가 초점이 돼 온 것이 사실이다.
구영모 울산대 의대 교수는 8월 생명공학감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황 교수팀 연구자가 난자를 기증했는가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토대로 기증 동의를 얻었는가 ▦연구기관의 윤리시험심사위원회가 난자채취를 심사했는가 등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를 조목조목 짚었다.
생명의 존엄성을 둘러싼 종교계와의 갈등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13일 배아줄기세포 연구 중단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또 김수환 추기경도 연구 중단을 요구하는 등 최근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종교-과학계 갈등은 재연되고 있는 양상이다.
6월 정진석 서울대교구장과 황우석 교수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동을 가졌지만 ‘배아가 인간인가 아닌가’라는 배아 지위 논란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7일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생명윤리’ 세미나에서 박상은 샘안양병원장(보건복지부 생명윤리위원)은 “독자적 인간생명으로서의 유전정보가 포함돼 영양분과 산소만 주어지면 인간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아 역시 인간”이라고 단언했다.
생명의 시점을 수정순간, 착상, 심박동 개시, 뇌파 작동, 자체 생존가능 시점, 분만 등으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수정 이후 생명과정은 연속적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점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일부 시험관 아기 시술도)는 살인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종교계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배아-성체 줄기세포 중 한쪽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김희원기자
■ 시민 66%가 "배아복제 연구 찬성"
시민들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생명과학 연구를 지지하는 실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ELSI)’ 연구팀은 최근 20세 이상 500명을 전화 조사한 보고서 ‘생명과학에 대한 시민인식 조사’(연구책임자 조성겸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배아복제를 연구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66%가 동의해 반대(27.2%)의견의 두 배를 넘었다. 기독교(66.3%) 천주교(56.5%) 교인들도 절반 넘게 찬성했다.
인간생명의 시점에 대해선 ‘자궁에 착상된 때부터’라는 대답이 39%로 가장 많았다. 즉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불임 시술용 잉여배아나 복제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수정 순간’이라는 대답은 25%였고 ‘출생 이후’도 20%나 됐다.
여성에게 큰 부담을 주는 난자 제공에 대해서도 예상보다 지지가 높다.
조성겸 교수가 3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성인 1,000명 중 20.9%가 일반적 연구를 위해, 36.8%가 가족 친지 등 주변사람을 위해 난자를 제공(남성은 권유)하겠다고 답했다. 한국갤럽이 7월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른 조사에서는 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권유)하겠다는 대답이 57.9%나 됐다.
하지만 과학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어서 1,000명 중 70.6%가 “과학자들이 연구가 초래할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2001년부터 ELSI연구에 참여해 온 조성겸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생명과학의 부작용이나 윤리적 문제 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연구가 가져올 의료적 혜택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희원기자
■ 폐기될 냉동배아서 줄기세포 얻어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과 연구진이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로 미국 특허를 획득한 것은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 성과에 못 지 않은 세계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현재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은 ▦신선 배아(남녀가 정상적으로 수정한 배아)를 이용하는 방법 ▦폐기 처분될 냉동잔여 배반포기배아를 녹여 이용하는 방법 ▦인간 체세포 핵을 핵이 제거된 동물 난자에 이식하는 이종(異種)간 핵이식 ▦인간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동종(同種)간 핵이식 등 4가지가 있다.
박 소장팀은 시험관 아기를 낳을 때 남는 여분의 수정란을 이용했다.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은 3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여분의 수정란을 냉동 보관해 두는데 이를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라고 한다.
박 소장팀은 이를 녹여 특수 항(抗)인간항체(AHLA)로 줄기세포인 내부 세포덩어리만 떼낸 것이다. 현재 국내 보관 중인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는 5만여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한번 냉동하면 생식목적으로 다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특허청은 물론, 전세계를 통틀어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특허를 얻은 것은 박 소장팀이 처음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도 미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으나 아직 받지 못했고 배아줄기세포 제조성공률도 박 소장팀의 63%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냉동 잔여 배반포기배아에서 만든 배아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할 때 면역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연구팀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 배아파괴 없는 두가지 방법 美서 개발
배아를 파괴하지 않고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개발됐다. 모두 쥐실험에서 성공한 것이지만 인간배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논쟁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줄기세포연구회사인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러지(ACT)의 로버트 랜저 박사와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의 로돌프 제니시 박사가 각각 개발한 두가지 줄기세포 추출법을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인터넷판 20일자에 실렸다.
랜저 박사가 개발한 방법은 초기배아에서 세포 하나만을 꺼내 배아줄기세포를 얻어내고, 나머지 세포는 그대로 배양시켜 자궁에 착상, 개체로 탄생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시험관수정을 통한 불임치료에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 앞서 유전질환을 검사할 때 쓰는 착상전 유전진단(PGD)에서처럼 수정 후 2일 된 초기 8세포기 배아를 이용하는 것이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를 포함, 일반적으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법은 수정 후 5일쯤 지나 세포수가 150개정도로 불어난 배반포기 배아의 내부세포괴에서 줄기세포를 꺼내는 것이다.
따라서 줄기세포가 채취된 배아는 파괴될 수밖에 없고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인간생명을 경시한다는 윤리논쟁의 핵심이 여기 있다.
하지만 랜저 박사는 8세포기 배아에서 세포 하나만 빼내 줄기세포로 배양하는데 성공했고, 7개 세포만 남은 배아는 아무 문제없이 쥐 자궁에 착상돼 새끼가 태어났다.
한편 제니시 박사가 개발한 방법은 체세포복제 방식을 변형시킨 것이다. 핵을 뺀 쥐 난자에 쥐의 체세포 핵을 삽입한 후 핵 속의 Cdx-2 유전자를 차단, 아예 다음 단계의 배아로 자라지 못하게 막는 방법이다.
이 배아는 줄기세포 채취가 가능한 정도까지는 자랐지만 개체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을 지속하지는 못해 ‘생명체를 파괴한다’는 배아연구의 논란을 피해가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애초에 개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배아에 조작을 통해 성장능력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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