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정부안을 둘러싸고 청와대 조사와 국정감사로도 의혹이 충분히 걷히지 않았는데, 이에 더하여 공공 공사 발주시 제일 싼 가격에 공사를 하겠다는 건설회사에 낙찰시키는 ‘최저가 낙찰제’를 재벌 건설사가 지난 수 년간 주장해 온 대로 폐지하자는 안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나라일이 심히 우려된다. 대한건설협회, 건설산업연구원, 삼성물산 부사장 등으로 구성된 민간 기구인 건설산업혁신위원회라는 곳에서 그런 주장을 최근에 했고 곧 공청회를 열 예정이며, 이어서 경제장관회의에 회부한다는 보도이다.
이 제도는 재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1년 초 1,000억 원 이상의 공공 공사에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후 낙찰가 평균이 예정가의 60%에 그치는 등 발주처의 예산을 크게 절감하는 기여를 하였다. 만약 연간 50조 원이나 되는 공공 공사에 최저가 낙찰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면 연간 최대 10조 원이 절약되었을 것이고 지난 5년간 40조 원 내외가 절약되었을 것이다.
●전면 실시되면 年10조 절약
그러나 어찌 된 연유에서인지 이렇게 나랏돈 절약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지 못하였다. 500억 원 이상 공사는 당초 2002년 초부터 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었는데 2년이 늦춰졌고, 100억 원 이상 공사는 2003년 초, 2005년 초로 미루더니 아직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대통령에게 보고한 추진 일정이 장관 바뀌면서 슬그머니 연기되었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정권인수위 때부터 확대 정책이 거론되었는데, 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폐지로 맞이하려 하고 있다. 일관성도 없고 책임지는 공직자도 없다.
앞으로는 가격뿐만 아니라 건설업체의 기술력까지 고려한 ‘최고 가치 낙찰제’로 한다는 것인데, 이는 최저가 낙찰제를 안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동안 5년간 시행한 1,000억 이상 공사에 기술력이 문제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설계대로 시공하는지 감리해야 하는 쪽에서 잘못한 것이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 미국부터 아프리카까지 시행하고 있는 단순명료하고 투명한 최저가 낙찰제가 우리나라에서만 문제를 일으킨단 말인가?
관치 금융과 금융 감독 부족으로 외환 위기, 신용카드 위기를 초래하더니, 그도 모자라 불투명한 낙찰제로 국고를 낭비하고 부패를 조장하고 재정 위기를 확대시키려는가? 정부 내 폐지론자는 과연 누구이며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건교부, 재경부 등 관련 부처는 아직 민간의 의견일 뿐이며 폐지 방침은 정해진 바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년 10월 재경부 장관이 이미 최저가 낙찰제 폐지 검토를 공언한 바 있기에 그런 주장을 믿을 수는 없다. 재경부는 1년 전 장관의 발언이 아직도 유효한지 명백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나 국회는 당초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최저가 낙찰제를 조속히 전면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를 상대로 한 계약 체계를 문란시키는 일부 관료의 농간과 재벌의 로비에 속거나 휘둘려선 안 된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건설 5적’이 활개 펴고 참여해선 안 된다.
●폐지론자 누군지 묻고 싶다
부가세나 소득세를 올려 기업 활동과 서민 생활을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최저가 낙찰제를 전면 시행하여 건설 비리를 축소하고 나라 곳간을 살찌워야 한다.
대부분의 똑똑하고 깨끗하고 유능하고 애국심 많은 공무원들은 자기 부서 일이 아니더라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가 정책의 시계 바늘이 어두운 과거로 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각 부처에 설립된 혁신 관리 조직은 세수 부족과 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혁신 차원에서도 건설산업혁신위원회의 안이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공감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적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최저가 낙찰제가 폐지된다면 나라의 수치이자, 참여정부의 수치이다.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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