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공안사범 구속 수사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하는 데는 젊은 날 검찰과의 악연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이 검찰을 불신하는 저변에는 논리적 판단 외에도 과거 변호사 시절 겪고 느낀 부정적 경험과 정서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검찰과의 첫 악연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한 노 대통령은 1981년 시국 사건인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됐다. 노 대통령이 변론을 맡은 학생은 자신이 당한 가혹한 고문을 폭로했고 재판정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 다음날, 담당 검사는 학생을 자신의 방에 데려다 놓고 노 대통령도 불렀다. 검사는 학생에게 양말을 벗으라고 한 뒤 그에게 “당신이 이 학생의 발톱이 빠졌다고 했지,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도 되느냐”고 소리쳤다.
노 대통령은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줘’ 에서 “당시 학생의 발톱은 빠져 있지 않았으나 새까맣게 죽어 반쯤 떠 있었다”고 회고했다. 고문을 외면한 채 발톱이 아직 안 빠졌다고 강변하는 검사를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검사는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이 죽었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될 줄 아느냐”고 협박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검사의 협박은 나의 투지에 불을 붙여놓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87년 시위 도중 숨진 대우조선 이석규씨 보상 및 시신 부검 문제를 놓고 수사기관과 충돌, 3자개입 혐의로 23일간 구속됐다. 이 때 노 대통령은 검찰권의 남용을 직접 체험하면서 검찰을 불신하게 됐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당시 노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한 검사는 지난해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았던 주선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부림사건이 노 대통령에게 불법 구금, 고문 등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면 자신이 구속된 대우조선 파업 사건은 공안 검사들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절감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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