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틀 동안의 칩거를 마치고 17일 퇴임식을 위해 출근한 김종빈 검찰총장은 지난 주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12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이후 검찰 전체가 술렁인 지난 나흘간은 김 총장에게 고뇌와 결단의 순간들이었지만, 그는 이날 차분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소신을 또박또박 밝혔다.
출근 후 김 총장은 먼저 이용훈 대법원장을 찾았다. 각각 전남 여수와 보성 출신인 두 사람은 평소에도 잘 알던 사이. 김 총장은 이 대법원장에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모시지 못하게 돼서…”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최대 관심은 천 장관과의 만남이었다. 통상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앞두고 장관을 예방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었지만, 천 장관의 빡빡한 일정 때문에 전날까지 접견 약속을 잡지 못하다가 만남이 이뤄졌다.
천 장관은 오전 국무회의 중에 이해찬 총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퇴임에 앞서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김 총장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끝까지 만남을 고집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김 총장은 “둘 사이의 얘기”라며 끝내 천 장관과의 대화 내용은 함구했다.
김 총장은 오전 10시50분께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도착, 집무실 밖까지 마중 나온 천 장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자, 들어갑시다”라며 방 안으로 이끌었다.
10여분 간의 짧은 독대 후에는 천 장관이 먼저 손을 내밀어 “그 동안 수고하셨다”고 악수를 나눴다. 김 총장은 “(이번 일은) 서로 간의 감정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는 말만 했다.
오후 대검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그 동안 아껴왔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강정구 교수 구속이 직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논란 많은 국가보안법 피의자도 다른 사건과 똑 같은 기준으로 구속여부를 결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음 총장에게 또 지휘권이 발동 되겠느냐”고 묻자 “한 번 겪은 일에서 뭔가 배우지 못한다면 현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퇴임식. 그는 퇴임사에서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검찰 중립을 훼손하는 심히 충격적인 일”, “이로 인해 검찰이 쌓아온 정치적 중립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졌다”며 자신을 퇴임으로 내몬 장관의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검찰권 약화 시도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며 그 예로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해 온 형사소송법 개정 등 ‘사법개혁’과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을 언급했다.
퇴임식 후 그는 300여 명의 후배 검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28년 영욕의 검사생활을 마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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