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검찰이 구속 수사 방침을 정하자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불구속 수사를 명령하고,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고, 야당이 법무 장관 퇴진을 주장하는 등 온 나라가 시끄럽다.
강정구 파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피의자의 인권과 검찰 개혁이 쟁점인가, 아니면 보안법 폐지가 쟁점인가. 시각에 따라 다른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권력의 오ㆍ남용이 이번 파동의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권력 남용은 검찰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번에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지만, 동정을 얻기는 어렵다. 검찰이 강 교수를 구속 수사하기로 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구태의연하고 인권을 경시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허준영 경찰청장이 강 교수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혔을 때부터 비판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검찰은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전혀 없는 피의자를 구속 수사하겠다는 건가.
검찰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졌다. 합법적인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에 반발할 수도 없고, 순순히 받아들이자니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사의를 밝힌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검찰은 뼈아픈 자기 반성을 토대로 하루빨리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그렇다면 천정배 법무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옳은가. 그것은 심각한 권력 남용이고 오용이다. 그는 지휘권을 발동하여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을 뿐 수사에 간섭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불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법 정신에 부합하는 권한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검찰의 피의자 구속 관행에 경고를 울리기 위해서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검찰의 인권 침해가 그만큼 심각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사회가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의 구속 방침이 지나쳤다 하더라도 장관이 비상수단을 써야 할 지경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중립성과 공정성이야말로 검찰의 생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법무 장관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휘권 행사를 구실로 특정 사건에 대해 법무 장관이 영향을 미친다면 검찰의 독립은 구호에 그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장관의 지휘권은 검찰이 명백하게 중립성과 공공성을 잃고 있을 때 극히 제한적으로 발동돼야 한다.
이번 파동을 국보법 폐지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국보법보다 검찰 개혁이 우선 목표라고 말하기에는 그 동안의 언동에 문제가 있었다. 강 교수 사건이 불거졌을 때 여당과 청와대는 일제히 구속 수사에 반대했다. 특정 피의자의 구속 여부에 대해 정권 핵심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국보법을 무력화하여 폐지로 몰고 가려는 전략이 이번 파동에 숨어 있다면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작년 말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던 국보법 개폐 논란은 아무런 소득 없이 잠복했는데, 그것은 여당의 입장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일부 독소 조항을 개정하고 대체입법을 하는 쪽으로 여야 협상이 진행되다가 “완전 폐지가 아닌 개정은 없다”는 강경론으로 기울었다. 천정배 장관은 당시 여당의 원내대표였다.
완승 아니면 안 된다는 정치는 있을 수 없다. 완승 아니면 판을 덮어버리겠다는 자세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 강 교수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보법에서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혀온 ‘찬양고무죄’인데, 그때 만일 그런 조항들을 개정했다면 지금 이런 소동이 벌어질 이유가 없다.
악용될 소지가 있는 애매모호한 법을 개정하지 않고 덮어 버린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다. 이제 와서 여권이 구속이냐 불구속이냐를 놓고 호들갑을 떨면서 공안사범의 인권 운운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개정할 수 있을 때 왜 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력의 오용과 남용이다. 교묘한 논리로 합법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정의는 아니다. 국보법은 국회에서 개정하든지 폐지하든지 해야 한다. 국민의 생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권력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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