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30일 이규효 건설부장관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북한이 서울을 삽시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금강산댐(임남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강에서 밀려온 물에 63빌딩이 반쯤 잠기는 그래픽이 연일 TV에서 방영됐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성금 모금 행사가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이듬해 2월 평화의 댐 착공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그러나 93년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안기부가 금강산댐 건설규모와 담수량 정보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5공 말기 전두환 정권이 위기 돌파용으로 치밀하게 준비한 ’조작 사건‘이라는 것이다.
▦까맣게 잊혀졌던 평화의 댐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02년 1월 초. 평화의 댐 상류에 난데없이 겨울홍수가 발생해 위성사진을 통해 분석해보니 금강산댐 상층부 3곳에 균열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대규모 홍수가 발생할 경우 북한의 의도와 상관없이 댐이 파괴돼 북한강 수계에 엄청난 물난리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결국 88년 1단계 공사를 끝낸 후 14년 만인 2002년 7월 2단계 증축공사를 시작했다.
▦‘국민사기극’이라는 오명을 썼던 평화의 댐 준공식이 19일 열린다. 착공한지 18년8개월 만이다. 높이는 125m로 국내에서 가장 키가 크다. 소양강댐보다 2m가 높다. 저수용량은 26억3,000만 톤으로 소양강댐, 충주댐에 이어 세 번째다. 이미 평화의 댐은 인기 관광코스가 됐다. 하루평균 300명, 1년에 11만 명이 찾는다.
화천군은 댐 완공을 계기로 이곳을 안보관광 명소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댐 광장에는 너비 135m의 초대형 부조가 조성됐고, 인근 백암산에는 평화의 댐과 금강산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들어섰다. 화천댐에서 평화의 댐까지 28km의 물길도 열린다.
▦냉전의 상징인 평화의 댐은 남북공존과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금강산댐 공사로 북한강 수량이 연간 17억 톤이나 감소해 천혜의 생태계가 무너졌다.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쉬리 배가사리 등 계류성 어종들이 자취를 감췄다.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던 주민들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금강산댐에서 정기적으로 물을 방류하는 등 단절된 수자원을 평화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애물단지에서 민족화합과 관광명소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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