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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일류기업 R&D로 일군다] (1)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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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일류기업 R&D로 일군다] (1) 삼성전자

입력
2005.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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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단지. 정문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무전기를 든 말쑥한 양복차림의 건장한 청년이 차를 막아섰다.

“차량 번호가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본사 차량인데 언론사 기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미리 통지가 됐을 텐데요.” “예정에 없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10분 가량 확인을 거친 뒤에야 차량은 정문에 들어섰다.

“하루에도 몇번씩 출입을 해 얼굴을 뻔히 아는 데도 매번 저렇게 빡빡하게 굽니다.” 기사는 웃으며 말했지만 규칙이니 이해해 달라는 눈치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기흥단지 중앙의 RS(R&D Super)동. 연구실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옷차림의 직원들이 군데군데 모여 얘기하고 있을 뿐 여느 사무실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세계 반도체의 역사가 이곳에서 쓰여지고 있다. RS동은 연구실과 시험용 반도체 생산라인이 함께 들어서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무실 뒤쪽에 테스트라인이 직결돼 있어, 연구결과가 곧바로 시험생산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12일 이 연구소는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50나노 공정기술을 적용한 16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칩 개발을 세계 최초로 해 낸 것이다.

나노(1나노=10억분의 1㎙) 기술은 통상 100나노 이하에서 물질을 조작하는 기술로, 50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적용해 손톱만한 크기의 0.3g짜리 칩에 트랜지스터 164억 개를 모아놓은(집적)것이다. 옛날 라디오 등에 쓰던 10㎝ 가량의 100g짜리 진공관으로 따지면 8톤 트럭 20만5,000대 분량에 해당된다.

반도체 발전 속도를 설명하는,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의 성을 딴 ‘황의 법칙’도 이러한 삼성전자의 탄탄한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매년 2배씩 증가한다’는 이 법칙처럼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1999년 256메가비트(Mb) 개발을 시작으로 매년 정확히 2배씩 증가해 왔다.

공정기술 또한 2001년 처음 100나노에 진입한 이후 2002년 90나노, 2003년 70나노, 지난해 60나노에 이어 5년 연속 세계 최초를 달리고 있다.

세계의 눈은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32Gb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할 지에 쏠려 있다. 50나노 이하는 웬만한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어 삼성전자가 ‘황의 법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황 사장은 “현재 기존 공정기술을 혁신하는 ‘3차원(3D) 구조’기술을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내년 32Gb, 2007년 64Gb 플래시 메모리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삼성전자의 기술은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이라는 목표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황 사장은 지난달말 “삼성전자는 13년간 메모리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지만 반도체 전체에서는 2위”라며 “2010년을 기점으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선두 주자인 인텔을 조만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익의 90%가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나오고 있는 인텔에 비해 메모리는 물론 시스템LSI, 메모리와 로직을 패키지화한 ‘퓨전 반도체’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삼성전자가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룬 이러한 눈부신 반도체 기술 뒤엔 막대한 투자와 기술개발에 대한 전사 차원의 전략이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구개발(R&D) 투자규모는 5조4,000억원이다.

지난해 순이익의 절반 가량을 R&D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의 연구개발비는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삼성전자의 R&D 인력은 2만4,000명으로 전체 임직원의 36%나 된다.

삼성전자가 2012년까지 34조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기흥-화성 삼성 반도체 클러스터’계획에서도 반도체연구개발센터(New R&D)는 내년 5월부터 본격 가동시킬 만큼 가장 우선적인 사업이다.

8,6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센터는 12인치 웨이퍼에 맞는 나노 기술 및 공정기술, 신물질 등 차세대 및 차 차세대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며 5,000여명의 연구인력이 신규 충원된다.

‘기술특허’는 삼성전자의 주요 경영 화두다. 윤종용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래에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술개발 뿐”이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미국 특허청 특허등록 6위에 오른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2,000여건의 특허를 등록해 ‘톱5’에 진입하고 2007년 ‘톱3’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류병일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장(부사장)은 “지금보다 더 작은 크기에 더 많은 용량의 메모리를 담는 칩을 만들기 위한 핵심기술은 현재의 기술개념을 완전히 뛰어넘는 신기술이어야 한다”며 “메모리 분야에서 향후 1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차세대 기술에 대한 개발 로드맵을 이미 수립했을 뿐 아니라 신물질을 이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등 수 십년을 내다보는 미래기술 개발과 원천기술 확보 계획도 서 있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 삼성 경계령

삼성전자가 2010년까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 되려면 지난 30여년간 반도체 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인텔(Intel)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인텔은 1968년에 설립돼 1971년에 마이크로프로세서(중앙처리장치·CPU)를 발명한 반도체 업계의 원조 기업이다.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창한 ‘무어의 법칙’은 ‘황의 법칙’이 등장하기까지 인텔이 주도해온 급격한 반도체 기술 발전을 설명해 왔다.

인텔의 지난해 매출은 36조원, 영업이익은 10조6,000억원으로 단일 반도체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전 세계 294개소에 지사 및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본사는 미국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 산타클라라에 있다.

삼성전자의 ‘추격 선언’에 대한 인텔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폴 오텔리니 인텔 사장은 “인텔의 사업영역은 매우 넓다”며 “삼성전자와는 모바일 CPU와 플래시메모리 등 일부 분야에서만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인텔은 지난 35년간 철옹성 같은 기술 지배력을 쌓아왔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PC의 99%는 인텔 기술(인텔 아키텍쳐·IA)에 의존해 만들어지며, 이중 70%는 인텔이 만든 부품을 1개 이상 사용한다.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용 반도체와 무선 통신 분야에도 진출, 제2의 퀄컴 신화를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인텔은 지난해 5조원(47억7,800억달러)의 막대한 자금을 연구ㆍ개발(R&D)에 투자했다.

그러나 인텔 내부적으로는 삼성전자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막대한 메모리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정보기술(IT)업계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팟(iPod)에 대량의 플래시메모리를 공급, MP3 플레이어와 초소형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업계를 위기에 몰아 놓은 것이 좋은 예다.

실리콘 밸리 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삼성전자는 차세대 무선통신기술 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와 부품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힘을 키워가면 인텔은 축적된 R&D 파워와 기술 표준 주도력으로 맞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타클라라=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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