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중국 산시성(陝西省)의 소읍 페이자완(裴家灣)의 농민들은 가뭄으로 농사를 망친다.그러나 지방정부는 농민들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세금을 인상한다. 관리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중앙정부의 세법을 검토한 뒤에야, 그들에게 부과된 중세(重稅)가 불법임을 알아챈다. 그들은 1만 2,688명의 서명을 받아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세금을 돌려달라고 집단소송을 제기한다. 결국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50만 2,500위안(약 6,000만원)을 환급해준다.
페이자완 농민들의 승리 소식이 퍼지면서, 인근 츠저우(子洲)의 농민들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결과는 딴 판이었다. 열정적으로 농민들의 소송을 돕던 마원린(馬文林) 변호사는 사회질서 문란을 이유로 구속되어 5년형을 선고 받는다. 개방이후 형성된 시민사회에 대한 열망과 인민의 요구를 계속 받아들이면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공산당의 두려움이 부딪히면서 빚어낸 아이러니다.
78년 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한 후 중국은 거침없이 세계 시장을 질주하고 있다.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는 예측은 대세로 굳어졌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공산당의 정통성을 되려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정부는 부패 등 추문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고, 인민은 체제의 모순에 끝 모를 불만을 터트리며 사회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앞의 사례는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기위해 법이 나라를 지배하는 대신 지배를 위해 법을 이용하는 중국의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볼티모어 선과 월스트리트 저널의 중국 특파원으로 7년간 일했으며 파룬궁 보도로 풀리처상을 수상한 이안 존슨은 ‘와일드 그래스’(원제 Wild Grass.들풀)를 통해 중국 밑바닥에서 조금씩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작은 변화들에 주목한다.
존슨은 산시성 마 변호사의 사연 뿐만 아니라 수도 베이징(北京)의 구 시가지를 보존하려고 애쓰는 박사과정의 학생과 철거민, 파룬공 시위에 참가했다 의문사한 한 노파와 진상 규명에 나선 딸 등 중국 정부의 억압에 맞서 싸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중국사회 변혁의 단초이자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권력은 단단하나 마치 알맞게 달구어지지 않은 강철처럼 부서지기 쉬운 경직성을 가지고 있다”며 “(가까운 장래에 중국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지만)체제의 붕괴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자체 모순과 결함으로 갑자기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대신한다.
저자가 추방과 구금을 무릅쓰고 사건 관계자를 만나 기록한 책인 만큼 긴장감과 현장감이 책갈피 곳곳에 묻어난다. 중국 공산당이 건국의 교두보로 삼았던 옌안(延安)의 풍경과 베이징의 역사를 묘사하고 서술하는 문장은 유려하고 단단하며 날렵하다.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신범씨가 번역을 해 눈길을 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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