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 아들을 마중하러 학교 앞에 갔다가 가만히 뒤따라 가 본 적이 있다. 친구들끼리 놀리고 도망가고 잡으러 가고, 구슬이나 미니카 같은 저희들만의 잡동사니 보물을 자랑하다가 바꾸기도 하면서 마냥 즐거운 아이들. 하나 둘, 집이 가까운 애들이 떨어져가고 가장 먼데 사는 아들만 남았다.
그래도 곧장 집으로 향하지 못하는 아들. 아파트 동 사이로 요리조리 들락거리는가 하면 먹이를 물고 가는 개미부대를 한참 들여다보고 유모차 탄 아기에게 까꿍도 한 번 하고 신주머니로 가로수를 툭툭 쳐보고 먼지 풀풀 날리는 흙더미와 물웅덩이만 골라 디디고. 아들의 등하굣길은 세상탐구 길이었다. 그날, 내가 바라는 ‘엄마가 만든 정갈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기 일 잘 하는 아이’는 살아있는 정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부모는 이혼했나 보다. 아이는 도시에 있는 아빠 집에서 여름을 보낸다.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는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말도 별로 없다. 가지고간 책도 다 읽고 TV보는 것도 싫증난 아들은 아빠의 낡은 잡지에서 산과 강, 호수 사진을 오려내 벽에 붙인다. 그제야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을 느낀 아빠는 아들과 함께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함께 가던 비밀장소, 잃어버린 호수를 찾으러 떠난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모두에게 발견되어 사람들로 붐빈다.
또 다른 그들만의 호수를 찾기로 한 아빠는 등산객이 다니는 길을 피해 산을 가로질러 간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비 내리는 산길을 걸을 때 아들은 괜히 따라왔다 싶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깊은 숲 속을 걸으면서 아들은 아빠의 잃어버린 호수와 낮에 보았던 시냇가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밤이 되어 모닥불 가에서 곤한 몸을 녹일 때 부자는 더욱 가까워진다. 음식을 준비하고 말도 많이 하고 커피도 마시게 해주는 아빠. 아들의 마음은 흐뭇하다. 둘째 날 아침, 온 세상을 황금색, 오렌지색,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햇살에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자는 그들만의 호수를 찾았다. 그리고 서로를 발견했다.
맑은 수채화로 산 풍경을 담은 이 그림책은 그들만의 호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찾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충만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 시선은 아들을 광대한 야생으로 끌어내는 아버지에게 더 끌린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사육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도시와 근교의 인공자연에서 얄팍한 해방감과 즐거움만 맛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존재마저 잊어버렸던 인간의 건강한 야성을 느끼게 될 거친 자연, 그곳에서라면 서로의 낯선 얼굴을 발견하고 한 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것 같다.
책 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