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를 ‘정복’한 비틀스는 기존의 모든 음악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놀라운 흡수력을 지니고 있었다. 척 베리, 버디 헐리, 엘비스 프레슬리 등 50년대의 로큰롤은 물론 60년대의 리듬 앤 블루스, 라틴 음악, 서프 음악 등을 모두 수용해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그런 비틀스가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하나 있다. 영국을 평정한 뒤 64년 의기양양하게 미국 정복에 나섰다가 이전에는 몰랐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다. 바로 밥 딜런의 포크였다. 남녀간 애정을 주로 노래한 비틀스에게 밥 딜런 음악의 사색적이고 깊이 있는 메시지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바로 그 밥 딜런이 처음으로 쓴 자서전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밥 딜런은 1960, 70년대 저항음악의 상징이 된 포크 음악가다. 그의 노래는 반전,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울려 퍼졌으며 특히 노래 말은 그 울림이 매우 깊어서 미국 고등학교, 대학교의 교과서에 실렸고 그를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보여주는 것은 이면에 숨어있는 밥 딜런의 진솔한 생각과 삶의 여정이다.
책은 밥 딜런이 가수 겸 작곡가의 꿈을 안고 1961년 뉴욕 맨해튼에 진출, 무명 가수로 고생하던 시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맨해튼 카페에서 다른 뮤지션과 달리 기타를 큰 소리로 연주하면서 하드코어 포크를 들려주었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을 아예 쫓아내든지 아니면 도대체 이게 뭐지 하고 더 가까이 오게 만들려 했다. 당시 그가 갖고 있던 포크에 대한 생각을 그는 책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포크송은 내가 우주를 탐구하는 방식이었고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말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가치 있고 생생한 묘사였다.”
그는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맨해튼 민속학센터를 드나들며 남북전쟁노래, 카우보이노래, 교회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만나고 민간설화책, 세계산업노동자 조합일지 등을 접했다. 19세기 중반 사람들의 일상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필름 신문기사를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기대와 역할론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내 가사가 멋대로 추정되고 그 의미가 논쟁에 휘말려 타락하고 내가 반군의 대형, 저항운동의 대사제, 불순종의 대가 등으로 공식 선정된 것에 진저리가 났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 뿐이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돼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책에 나타나는 밥 딜런은 저항과 자유 정신의 상징이 아니라, 개인의 안온함을 추구하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현실에 대한 적극적 저항에서 밥 딜런의 매력을 찾고자 했던 독자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서 살고자 했던 그의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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