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과 포연이 실전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실체는 공포탄일뿐 포신과 총열을 떠나 적군을 향하는 것은 레이저였다. 실사격 없이 실전처럼 훈련하는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KCTC)’은 전자적으로 움직이는 미래 전장 그대로였다. 기자가 현장에서 실전훈련을 함께 했다.
통제실
11일 오전 5시50분 일출 30분 전. 강원 홍천군 과학화전투훈련단 훈련통제실은 훈련부대(8사단 OO연대 X대대)의 주간공격 훈련을 앞두고 분주했다. 벽면에 설치된 대형모니터에 훈련장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뜨고 작전장교들은 사방에서 울리는 전화벨과 무전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표시된 커다란 섬광을 지켜보던 훈련부장 이훈기 대령은 “저렇게 중대원들이 밀착해서 움직이니 상대방 습격조 요원들에게 노출되고, 포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화면의 섬광은 오전 4시33분 대항군이 이동 중이던 훈련부대를 향해 152mm포 30발을 집중포화했다는 표시였다.
훈련부대는 9명 사망, 14명 중상, 8명 경상의 타격을 입었다. 사망표시가 된 물체에 커서를 갖다 대니 온갖 정보가 화면에 뜬다. 사상자의 성명은 물론 직책 병과 소속부대는 물론 피해원인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6시부터 시작되는 훈련부대의 주간공격 작전이 벽에 걸린 대형화면에 떴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 952고지를 점령하는 임무를 띤 아군 X대대와 이를 막기 위한 대항군(가상북한군 1개 대대)의 배치 상황이다.
X대대 1ㆍ2ㆍ3중대 중 정찰조는 이미 10일 오후 11시를 기해 적진에 침투했다. 나머지 중대원은 오전 1시까지 산속에서 판초를 덮고 가면(假眠)을 취하는 상태로 전개해 있다.
전투준비
X대대의 작전이 본격화한 오전 7시 통제본부에서 15㎞떨어진 전투훈련장으로 옮겼다. 주력 부대인 2중대와 주공격을 돕는 3중대 인원들이 KM5연막을 헤치며 옥토골 계곡으로 뛰고 있었다. 초가을이지만 골 깊은 훈련장은 한기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검은 위장크림을 칠한 병사들의 얼굴은 화로처럼 달아 있었다.
병사들이 든 K2소총과 90㎜무반동총에는 모두 레이저발사기인 ‘마일즈’ 장비가 달려있고, 병사들 팔뚝에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사격할 때마다 레이저가 나가지만 병사들은 “장난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마찬가지로 적군이 쏘는 레이저에 맞을 경우 센서를 통해 맞은 부위가 확인되고, 사망자는 뒤로 빠져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다.
중상자는 실전처럼 후송된다. 방어훈련을 하다 손을 다쳐 붕대를 감고 있던 전동호(22) 상병은 “눈 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적만 생각하면 머리털이 곤두선다”며 “대항군 총에 맞아 동료가 쓰러질 때는 나도 모르게 복수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병사들은 다소 피곤해 보였다. 10일 오후 훈련부대 취사장(세트)에 대항군의 포탄이 떨어져 많은 대대원이 저녁식사도 못하고 새벽부터 작전에 투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투상황
10시가 넘어서자 대항군이 처 놓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됐다. 산을 넘은 2소대가 연막을 피우며 대항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사이 1ㆍ3소대는 반대쪽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아군은 대항군의 1차 저지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공격에만 신경을 쓰는 사이, 아군의 대대지휘소가 습격 당하고 전력손실 또한 너무 커 더 이상 전투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아군 전력이 29%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훈련부장 이 대령은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아군의 스파링 파트너인 대항군은 ‘전갈대대’라는 애칭을 가진 ‘무적군대’라고 했다. 훈련부대는 훈련장에 들어와 고작 2주일간 방어ㆍ공격훈련을 하지만 대항군은 붙박이로 모든 훈련부대를 상대하기 때문에 아군의 전술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훈련단장 배종욱 준장은 “실전 같은 전투경험을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X대대장 강준규 중령(40)도 “총소리가 나면 나무 뒤에 숨던 병사들이 이제는 자동적으로 엎드리게 된 것이 최대의 수확”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훈련단의 현재 규모로는 1개 대대가 9년에 한번 꼴로 훈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일반병의 복무기간이 2년임을 고려하면 대다수의 육군 병사들이 과학화훈련장을 한번도 경험해 보지도 못하고 제대하는 셈이다.
홍천=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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