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
14일 오전6시(한국시각 오전10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행정수도 무자파라바드. 태양은 다시 떠올랐다. 밤새 온 몸을 날카롭게 찌르던 맹추위는 아침햇살에 한풀꺾였다. 거리는 고요했다. 전 날까지 도시의 대기를 채웠던 시신 썩는 악취도 신선한 새벽공기에 녹아내린 듯 했다.
이른 아침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낯빛도 한층 밝았다. 먼저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고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때에 절은 얼굴, 누추한 옷차림, 얼기설기 실로 상처를 꿰맨 이마등 볼품 없는 몰골들이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카슈미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초롱초롱했다.
파키스탄 대지진 참사 일주일째다. 12만5,000명이 사는 무자파라바드는 시 스타디움을 비롯해 관공서 건물 대부분과 주택 절반이 주저앉았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만명이 깔려 죽거나 산채로 잔해더미에 묻혔다. 부근 산악지대 마을엔 산사태까지 겹쳐 마을전체가 사라지는등피해가 극심했다. 비스킷 부스러기처럼 부서진 건물과 짓눌린 두부처럼 폭삭 내려앉은 주택들은 그날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심판의날’이라 불렀던 그 날의 비극을 차츰 뇌리에서 지우고 있었다.
친척을 잃었다는 아더(28)씨는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살아남은 가족이 많다. 그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건물더미 밑에 묻혀 있을 가족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당장 필요한 가재도구라도 건지려는 마음에 매일 아침 집터를 찾아갔다.
어차피 더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무너진 집더미에서 유세프(52)씨는“전쟁과 배고픔, 가족의 죽음 등 지진이 아니더라도 삶은 늘 고통이었다. 우린 그저 신의 뜻을 따를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잔해만 치우면 후딱 집을 지을수 있을 거라며 멋쩍게 웃었다
도시 곳곳엔 며칠 동안 사라졌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한동안 충격에 쌓였던 아이들의 회복속도는 빨랐다. 아이들은 구조팀의 막사가 잇는 아미 독립학교 운동장을 맴돌며 뛰고 재잘거리고 놀았다. 보카스(9)군은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공포는 여전하다. 13일 새벽에도 리히터규모 5.5 수준의 강력한 여진이 4차례나 찾아왔다. 하지만 빨리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민들은 지진을 외치면 신속하게 반응했다. 13일 오후 헬기로 15분을 날아 찾은 산 중턱 오지마을은 100여명의 중상자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몸이 잘린채 누워있었다. 심지어 머리가죽이 모두 벗겨져 뼈가 드러난 흉측한 중상자도 있었다. 국내 NGO ‘선한사람들’과 터키팀은 이곳에서 환자300여명을 치료했다.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다.
일단 유엔이 주도하는 국제 구조단은 13일을끝으로구조활동을 마감했다. 한국 독일 캐나다 러시아 터키 영국 등 6개국 17개팀은 14일 오전 철수를 시작했다. 건물 밑에 깔린 사람들의 생존율이 희박한데다, 이제는 구조보다 생존자에 대한 구호와 의료서비스, 방역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은 떠나는 이들에게 텐트, 물, 음식, 모포 등 필요한 물품들을 꼼꼼하게 일러줬다. 구호팀이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그들은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 희망을 말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무자파라바드(파키스탄)=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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