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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게임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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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치게임 할 때가 아니다

입력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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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 김영삼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 호기롭게 말했다. “차기 대선후보에 대해선 당 총재로서의 생각을 밝히겠다.” 사실상 차기 후보 지명권을 행사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신한국당 전국위원회에서 김 대통령은 풀이 죽어 있었다. “대선 후보는 공정하고 완전한 자유경선으로 선출돼야 한다.” 후보선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가 손을 든 것은 당연했다. 96년 11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8%였다. 하지만 석 달 동안 노동법 날치기 후유증과 한보 사태, 아들 현철씨 비리사건을 겪으면서 97년 2월엔 18.8%로 급전직하했다. 이런 마당에 오기를 부렸다면 망신만 당했을 것이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20%대다.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있고, 측근이나 친인척 비리 같은 게 없었는데도 이렇게 떨어진 것은 기록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2002년 5월 문화일보 조사에서 세 아들이 비리혐의로 구속됐는데도 34.7%의 지지도를 보였고, 이게 그때까지 집권기간 중 최저였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주눅드는 법이 없다. 정기국회가 끝날 무렵이면 또 다시 국민을 향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모양이다. 3만명에게 독일 연정에 관한 이메일을 보낸 것도 그렇고, 청와대에 메시지 기획비서관(가칭)이 신설되고 정무기능이 커지는 것도 심상치 않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국가와 정국운영 시스템을 바꾸자는 제안이 나올 거란다.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던진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도 비슷한 맥락 같다.

사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주제는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 우선순위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손자병법엔 전쟁을 하기에 앞서 따져봐야 할 5가지 항목이 나오는데 그 첫째가 ‘도(道)’이다. 백성이 얼마나 왕과 한 마음이 돼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노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있는 국민은 10명중 3명도 안 된다. 그렇다면 8ㆍ31 부동산 대책처럼 시행하면 그만인 정책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있는 정치게임은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설령 노 대통령이 정치적 사심을 완전히 걷어낸 지고지순안 제안을 내놓는다 해도 이런 상황에선 굴절되기 십상이다. 만성화한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는 정치적 신뢰상실의 다른 표현이다.

게다가 상대(야당과 반노 진영)는 그 동안 ‘권력 통째 이양’, ‘임기단축’ 등 노 대통령의 잇단 충격 발언을 접하면서 면역력을 갖게 됐다. 대통령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알만큼 안다. 시중엔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대통령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래도 한다면 손자병법 상 최하의 방법인, 전열을 정비한 적의 성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장면을 또 보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꼭 하고 싶다면 시간을 두고 동력을 키우는 게 먼저다. 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여론의 뒷받침이다. 노 대통령은 다행히 아직 시간이 있다.

하지만 불길한 것은 여전히 오기 어린 청와대의 기류다. 대학생처럼 ‘진정성’을 되뇌더니, 이제는 “대통령은 민심을 꿰뚫는 역사적 통찰력을 지녔는데 여론이 이를 헤아리지 못한다”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참모까지 나왔다. 이들에겐 차라리 통치할 국민을 바꿔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싶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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