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개혁 작업이 좌충우돌이다. 좌측 깜박이를 넣은 듯하다가 갑자기 우회전을 하고 그 반대로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 참여정부가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국립대 법인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참여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과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를 내세워왔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는 지방을 피폐시키고 서민들을 울리는 전형적인 시책이다.
국립대 법인화란 간단히 말해서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립대가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라는 것이다. 대학이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도 아닌데 무슨 수로 돈을 벌겠는가? 등록금 인상밖에 방법이 없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립서울대학이야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등록금을 두세 배 올리더라도 그 전통과 명성만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다. 다만, 가난한 수재들과 가족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고, 교육을 통한 신분세습이 더 공고화하는 결과는 어찌할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지방 국립대는 사정이 다르다. 지방 국립대가 서울의 사립대에 대해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해온 것은 사립대의 절반 수준인 낮은 등록금 덕이 적지 않았다.
서민 가정의 우수 학생들에게 그것은 상당한 혜택이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지방 국립대의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인상한다고 해보자. 지방 국립대는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에서 인재의 공동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이유이다. 지방 국립대가 그간 경영상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다는 것인지, 지방 사립대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인지, 혹은 법인화를 통해서 사실상의 사립대가 되면 경쟁력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인지 자못 의아하다.
지방 국립대는 그간 지방을 대표하는 학문의 전당으로서 성장해왔다. 혹 그렇게까지 평가하지 않더라도 지방의 학문적 체면을 세우는 버팀목이 되어왔다고 하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비수도권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대학으로 과학기술대와 포항공대가 있지만, 이 대학들도 파격적인 등록금 혜택을 주는 대학이지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는 아니다.
대학 교육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공공 부문이 강력히 지원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자 추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주립대학을 두어 가난한 수재들의 등록금을 보조하고 있다.
미국 주립 대학들은 대부분 그 지역에서 지명도가 높다. 유럽의 많은 국가도 대학 교육을 국가가 전적으로 지원한다.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에서는 이 제도를 최근에 시행하였는데, 그 성과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국립대 법인화 추진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의약분업이나 의학ㆍ법학전문대학원제 신설의 재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약분업은 항생제 오ㆍ남용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시행되었지만 서민들에게 두 배에 가까운 의료비 부담을 지웠다.
또 의학ㆍ법학전문대학원제는 이 대학원들의 등록금이 학기당 천만 원을 넘어, 서민 가정 출신들이 의사, 변호사로 진입하는 기회를 가로막을 전망이다.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개혁 방향의 좌우를 떠나 뭐든지 바꾸는 것이 개혁과 실적이 되는 개혁 지상주의 풍토의 산물로 여겨진다. 사회의 근간과 주요 제도들을 수시로 뒤집는 개혁 지상주의야말로 요즘의 사회적 혼란과 국가적 비능률의 주요 요인이 아닌가 한다.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