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역 앞. 대한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무료진료소 앞에서 노숙인들이 줄을 서서 치료 순서를 기다린다. 여느 때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기운이 빠져 보인다.
서울에 하나 뿐인 이 노숙인 진료소를 찾는 환자는 대략 하루 100명선이지만 공간이 좁아 정상적인 진료가 힘들다. 그래서 진료소는 7월부터 한국철도공사에 서울역 내의 남는 공간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철도공사는 언론에 이 문제가 보도되고 나서야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서울역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서, 일부 공간이 군사시설이어서, 이미 종합개발계획이 잡혀 있어서….” 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8월 말 지원센터 임영인 소장을 만나 ‘전향적 검토’를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해결된 것은 없다.
견디다 못한 진료소가 11일 컨테이너로 임시진료소를 만들자 철도공사는 트럭으로 컨테이너 출입문을 막았다. 한바탕 소동 끝에 트럭을 치우긴 했지만 철도공사 측은 “불법시설물은 철거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자기 시설에 노숙인이 몰려드는 것을 반기는 기관이나 기업은 없을 것이다. 철도공사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부서도 아니다. 그러나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최소한의 진료공간을 제공해 줄 아량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까. 더욱이 진료공간을 늘린다고 노숙인들이 서울역에 더 몰려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지나친 예단일 뿐더러 ‘자기 몸을 보살피겠다는 의지가 있는’ 환자들과 말썽을 일으키는 일부 노숙인들을 동일시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곧 겨울이다. 가진 것 없고 몸까지 성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계절이다. 이들도 한때 철도공사의 깍듯한 서비스를 받으며 열차를 이용하던 ‘고객’이었을지 모른다
유상호 사회부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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