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로 인해 환자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ㆍAIDS)에 걸렸더라도 혈액검사의 의무를 다했다면 대한적십자사와 병원은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액도 잠복기인 4~12주에는 음성반응이 나오는 의학적 한계를 인정한 것이지만, 수혈 에이즈 감염자가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게 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신수길 부장판사)는 12일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홍모(19)씨와 홍씨 부모가 대한적십자사와 홍씨 수술을 담당한 G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헌혈 혈액에 대한 에이즈 검사기준이 법으로 규정된 1987년 이후 합법적인 검사절차를 걸친 수혈 감염에 대한 첫 판결이다. 87년 이전에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검사가 부실해 감염됐다”며 적십자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한 적이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HIV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방법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사용하고 있는 효소면역검사법은 민감도(바이러스 발견 확률)가 99.9%에 달하지만, HIV에 감염된 혈액이라도 감염된 후 4~12주에 해당하는 항체 미형성기에 있다면 음성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현재의 의학적 수준과 경제적 사정 및 혈액 공급의 필요성 측면을 고려하면 HIV에 감염된 혈액의 공급을 배제할 적절한 방법이 없어 대한적십자사에게 배상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한적십자사는 동성애자 등 에이즈 감염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의 헌혈을 배제하고 고위험군에 속하는지 판별하기 위해 조사 및 설명, 문진(問診) 등을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초 HIV 감염자가 헌혈 당시 이미 3차례 헌혈 경험이 있었고 AIDS 관련 증상이 없었으며 AIDS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홍씨는 2002년 자신의 아파트 9층에서 추락, 뇌를 다쳐 수술을 받은 후 회복 과정에서 수 차례 수혈을 했고 이후 혈액검사를 통해 HIV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지자 소송을 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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