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총리 헬무트 콜이 동독 출신의 젊은 여성 앙겔라 메르켈을 정치적 양녀로 삼은 데는 정략이 작용했다. 사회주의적 가치에 익숙한 동독인들에게 서독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상징적 역할 모델로 내세운 것이다. 메르켈은 장벽 붕괴 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으나 반체제그룹을 대표하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30대 중반 나이에도 앳되고 청순한 용모의 메르켈이 하원의원과 장관으로 입신하는 모습은 동독 젊은 세대에게 체제 전환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효과가 컸을 법하다.
■첫 통일총선에서 콜의 기민당이 동독지역에서 압승한 것도 이런 기대에 힘입었다.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에 싫증난 동독인들은 이념적으로 가까운 좌파 사민당을 외면한 채,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우파 기민당을 선택했다. 이어 콜 총리는 메르켈을 기민당 부당수와 가족노인부 장관에 발탁, 출세 길로 이끌었다.
영민하면서도 단호한 면모가 돋보인 점도 있지만 역시 역할 모델의 효용성에 주목한 때문이다. 서독 정계가 다른 동독 반체제 출신들을 이내 도태 시킨 사실에 비춰보면, 권력정치와 무관한 젊은 여성이란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메르켈의 이런 상징성은 기민당수와 총리후보에 오르기까지 큰 자산이었다. 그러나 사민당의 경제개혁 실패에 따른 이번 총선에서는 오히려 승리를 막는 요인이 됐다. 시장경제 강화로 요약되는 복지축소, 고용 유연화, 세금인상 등의 공약이 사민당 개혁에도 불만인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당초 압승을 자신하던 기민당은 제1당은 됐지만 사상 두 번째 낮은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특히 그가 동독출신 여성이란 점이 동서 양쪽에서 부정적으로 작용, 9% 정도 지지율을 낮췄다는 분석이다.
■이는 독일 사회가 흔히 생각하기보다 보수적인 탓이 크다. 그러나 서독출신보다 강경한 자본주의적 가치를 좇는 전향자를 동서독 유권자 모두가 내심 꺼린 결과라는 분석은 흥미롭다. 사상 첫 여성 총리의 영예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출세행보에서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비유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층 흥미로운 것은 메르켈이 여성들에게도 외면 당해 ‘여성 보너스’를 누리지 못한 이유다. 터프 한 면모로 남성우위 마초(Macho) 사회에서 성공했지만, 여성적 매력과 미덕을 보이지 못한 것이 더 큰 함정이었다는 풀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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