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밤풍경이 바뀌고 있다.
2년 2개월의 공사 끝에 개통된 청계천은 단순한 볼거리일뿐 아니라, 도심 자체의 기능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밤이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 을씨년스럽던 도심의 밤이 청계천을 찾는 사람들로 생동감을 얻고 있다.
복원 이전심야에는 인근 주점가 취객들만의 해방구였던 청계천변이 손 맞잡은 가족과 부부, 연인, 친구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12일 밤 9시 청계천 들머리인 청계광장~수표교 구간. 진입로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로 눈이 아플 지경이다.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카메라로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젊은이들 때문이다.
개천 중간중간에 조경용으로 만들어진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면서 포즈를 취하거나,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호안의 워터스크린(폭포)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이들도 눈에 띈다.
사진작가 김운상(34)씨는 “서울에서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한강 정도인데 사진을 찍기 위해 접근하려면 어디서 찍어야 할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라며 “반면 청계천은 밤이 되면 다양한 색감과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공해 젊은이들의 사진촬영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개통 며칠만에 청계천은 야간 산책코스로 자리잡았다. 이한규(33ㆍ서울 성동구 금호동) 주정경(35)씨 부부는 “호젓한 교외로 여행다니는 게 우리 부부의 취미지만 주말이 아니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청계천에 오면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숲속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울토박이로 부인, 손자와 함께 찾았다는 이광진(64ㆍ중랑구 면목동)씨는 “다섯 살짜리 손자가 졸라 개통 첫날인 1일 ‘새물맞이’행사 때 이어 두번째 찾아왔다”며 “어린 시절 청계천변에 빨래하는 어머님을 따라갔던 기억, 물놀이한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었다”며 흐뭇해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부부 김경모(55ㆍ서울 종로구 숭인1동) 박춘자(51)씨는 “청계천이 개통된 후 매일 저녁을 먹고 청계7가에서 청계광장까지 1시간30분 가량 왕복 달리기를 하고 있다”며 “너무 좋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부인과 산책 나온 이진우(60ㆍ서울 강남구 잠원동)씨는 “그간 종로나 무교동 등 시내는 젊은이들이 점령해 나이 든 세대에게는 ‘출입금지구역’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청계천 덕분에 자주 시내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은퇴한 친구들과 자주 찾아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간간이 비틀거리는 취객, 몰래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거나 맥주를 들이켜며 물에 발을 담그고 발장구를 치는 젊은이 등 안전규정을 위반한 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기도 했다.
야간 청계천은 6명의 관리인원이 5.8㎞ 구간을 책임진다. 이들은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격무를 하지만 막상 쉴 곳도 없다.
안전관리요원 조모(54)씨는 “하루종일 발에 물집이 잡혀가며 수십 ㎞를 왔다갔다 하면서 혹시 사고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인 만큼 시민들이 안전규정을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관철동의 ‘카페 드 구티에’ 황정숙(49) 점장은 “복원 이전만 해도 솔직히 청계천 기대효과에 반신반의했지만 개통 이후 매출이 급격히 느는 것을 실감하고 깜짝 놀랐다”면서 “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청계천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야간 시민휴식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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