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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英극작가 해롤드 핀터/ "불안·긴장의 압축 대사… 모호함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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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英극작가 해롤드 핀터/ "불안·긴장의 압축 대사… 모호함의 매력"

입력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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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13일 오후8시(한국 시각)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영국의 유대계 극작가 해롤드 핀터(75)를 호명했다.

한림원은 “(그가) 일상의 잡담을 통해 (현대인의)위기를 들추어내고 ‘닫힌 방’과 같은 억압 속으로 헤쳐 들어가려 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또 “핀터는 사람들이 서로서로에, 그리고 가식의 편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폐쇄된 공간과 예측할 수 없는 대화라는 연극의 기본을 되살려 놓았다”고 설명했다.

런던 동부의 헤크니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부터 연극에 두각을 나타내며 학교(해크니 다운스 문법학교) 연극 공연에서 주연을 도맡는다. 왕립연극아카데미(중퇴) 등을 거치며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받았으며 ‘데이비드 배론’이라는 예명으로 명문 극단 ‘아뉴 맥매스터’ 등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그는 27살에 쓴 처녀작 ‘방’(1957)으로 ‘선데이타임즈’ 학생 연극경연대회에 참여하며 극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청년 시절의 무대 경험은 훗날 배우와 관객의 관계 등에 대한 그의 절제된 미학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부조리극’의 대가 사뮤엘 베케트의 세례를 가장 야무지게 받은 현대 극작가로 통한다. 20세기 연극의 전ㆍ후기 분수령으로 꼽히는 베케트 이후, 즉 20세기 후반부의 영ㆍ미 연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가장 많이 연구되고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라는 의미다.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위협의 극(Comedy of Menace)’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일상의 사실적 공간을 배경으로 희극적 상황이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모종의 불안이 극 전반에 걸쳐 암시되면서 관객들을 긴장케 한다. 그 불안과 긴장은 초기작 ‘음식승강기’(dumb waiter)나 최근작 ‘재에서 재로’(ashes to ashes)에서 보여지듯 2차대전기의 유대인들의 수난 같은 악몽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권력의 본질에 대한 참혹함이기도 하고, 현대인의 분절적 관계와 절망적 소외 등 현대적 주제에서 배어나오기도 하다.

그는 가장 문제적인 현대 극작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이 모호하고 난해하다는 의미다. 이는 그가 무대지시와 대사에 극도로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한 두 마디의 짧은 대사에 이은 휴지부(pause 또는 silence)의 연쇄로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부여한다. 하나의 단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여러 갈래로 분기되고 무한대로 확장되기 일쑤다. 대사 역시 시처럼 압축적이어서 한 가지로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를테면 다면체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결혼해서 돌아온 장남 내외, 특히 그의 20대 아내가 두 동생과 시아버지와의 근친간적인 관계를 맺고 매춘까지 벌이는 것으로 암시되는 내용의 작품 ‘귀환’(Home Coming)의 경우 여성의 이미지가 신화적으로 해석돼 어머니, 연인, 창녀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되는가 하면,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 담론의 맥락에서 분석되기도 한다. 또 이민자의 귀환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영ㆍ미 관계의 정치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관리인’(The Caretaker)에서는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적 담론 위에 탈식민의 목소리를 담아, 문화 정치적인 스펙트럼으로 분석ㆍ비평되기도 한다. 한국외대 손동호(영어과 드라마전공) 교수는 “그는 작품을 통해 너무 말을 안 해서 숱한 해석을 끌고 다니는 작가”라며 “그 점은 연구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이지만 관객 입장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공연의 느낌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게 한다”고 평했다.

국내에도 그의 팬은 적지 않아, 극단 ‘가변’ 등이 주축이 돼 매년 9월 ‘핀터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3회째 공연은 ‘콜렉션’ ‘핫 하우스’ ‘귀향’ ‘배신’ 등의 레퍼토리로 최근 대학로에서 열렸으며 현대영미드라마학회의 추계학술세미나 주제 역시 핀터였다. 국내에는 ‘해롤드 핀트 전집’(전9권, 평민사)이 번역돼 있다.

연출가로도 활동중인 그는 세익스피어상, 유럽문학상, 피란델로상, 데이비드 코헨 영국문학상 등 굵직굵직한 문학상과 로렌스 올리비에 특별상, 몰리에르 데 도뇌르를 받은 바 있다. 런던 퀸메리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한 그는 아내인 역사학자 안토니아 프레이저와 런던에 살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英 이라크전 참전 비판 등 평화운동가로 활발한 활동

극작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정치적으로 강한 좌파 색깔로 수상 당시 파란을 일으켰던 1997년 이탈리아의 다리오 포 이후 처음이다.

해롤드 핀터는 작품 이외에도 행동파 지식인으로 국제 사회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쳐왔다.

2002년 이라크 참전 의사를 밝힌 영국의 토니어 블레어 총리를 향해 “부시 미국 대통령을 지시에 따라 이라크와 전쟁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도 한 예. 2003년에는 부시 대통령의 영국 방문 당시 수십만 명이 운집한 시위에서 강연자로 나서 누구보다도 강한 반전평화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영국 출신 유태인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년 시절 2차 세계 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겪은 것이 그의 이런 사상 형성에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 쿠테타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인권 운동에 눈을 떴으며, 이후 99년 코소보 사태 때도 나토의 개입을 비판하며 국제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2002년 위암 판정을 받았으나 여전히 왕성한 국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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