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마다 도둑이 도사리고 있어요. 안전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서쪽 135㎞ 지점에 있는 아보타바드 주민들은 머리를 내저었다. 현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한국 구조팀이 파키스탄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로 알려진 발라코트와 가리하비블라로 행선지를 정한 뒤였다.
공포의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피해지역 주민들은 도둑으로 돌변했다. 최후의 생존 방식이었다.
12일 오후6시(한국시각 12일 오후10시) 길을 나섰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현지인 3명이 동행했고 차량의 유리는 모두 검은색 커튼으로 가렸다. 이슬람 수니파의 표식이다. 이날 이슬라마바드 등에서는 리히터규모 5.6의 강력한 여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12인승 벤 안엔 싸늘한 긴장이 감돌았다. 발라코트를 포기하고,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75㎞ 떨어진 가리하비블라로 최종 행선지를 정했다.
2시간 뒤 가리하비블라 주변 마을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의 도시였다. 좁은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가는 트럭의 전조등만이 마을의 윤곽을 잠시 비추고 사라졌다.
마을은 거대한 돌무덤으로 변해있었다. 허리가 잘리거나, 폭삭 주저 않거나, 지붕이 쩍 갈라지거나 그 모양새는 달랐지만 담겨있는 슬픔은 매한가지였다. 어둠에 묻힌 사람들은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거나 삼삼오오 화톳불에 쪼그리고 앉아 희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너진 집터 주변엔 텐트 촌이 형성됐다. 텐트마저 구하지 못한 이들은 숲속의 덤불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히말라야 산자락의 겨울이 이미 시작됐다”고 전했다. 며칠간의 폭우가 그친 뒤라서인지 새벽 기온은 영하를 넘나들었다.
폭우가 멎으면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세계식량계획(WFP) 등이 접근 가능한 피해지역에 식량과 텐트, 메트리스 등을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백주(白晝)의 약탈을 피해 밤늦게 구호물품을 몰래 전달했다. 구호물품을 담은 트럭 꽁무니엔 흰옷의 물결이 넘실댔다.
가리하비블라 지역의 유일한 병원인 쿤하르기독교병원도 대지진의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첫날 수백여명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왔다. 대부분 팔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진 사람들이었다. 길가에서 대충 응급처치를 마쳤지만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갔다.
인근 가간계곡의 고멘트 여자고등학교는 건물이 무너져 내려 315명의 여고생들이 매몰됐다. 부모들이 달려와 손과 막대기로 잔해를 치웠다. 그렇게 65명을 살렸지만 나머지는 어림없었다. 부모들의 손은 피투성이가 됐다. 계곡 일대는 부모들의 피맺힌 절규와 땅 밑에 깔린 아이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군인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상부의 명령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하에서 들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는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ICRC는 파키스탄에만 아직 1만명 정도가 붕괴된 건물 등에 매몰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민들은 3만여명이 살았던 가리하비블라 지역에만 5,000명 넘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 시키유(32)씨는 절규했다. “사람들을 도둑으로 만드는 것은 정부의 무관심과 관료주의입니다. 그들은 외국의 원조만 기다려요. 아직 죽지 않은 이들도 과장해서 발표하죠. 당장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구호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가리하비블라=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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