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있는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을 맡게 되면서 눈여겨보고자 한 것은 문학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확장시켜 줄 작품이었다. 오늘은 그런 작품을 원하는 시대다. 그러나 최근의 소설 작품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는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사실과 환상, 픽션적인 것과 넌픽션적인 것의 낡은 구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구성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큼은 보람이었다.
■ 전성태 '강을 건너는 사람들'/ '탈북의 현장' 숨막히는 묘사 압권
전성태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탈북자의 이야기를 간명하고 긴장감 있는 문체로 풀어낸 수작이다. 오랫동안 그 자신만의 단편소설의 미학을 구축하기 위해 정진해온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의 가치는 무엇보다 생생한 현장성이다. 이는 다른 많은 작품들의 기교와 실험을 능가하는 이 작품만의 미덕이다. 강을 건너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압축적인 대화와 선명한 묘사는 압권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잡이 여성의 안내를 따라 강을 건너 북한을 떠난다. 강을 건넌 후 길잡이 여인은 포대기로 업고 온 죽은 제 아이를 땅에 묻는다. 굶주린 나머지 죽은 아이들의 시신에까지 손을 댄다는 풍문 아닌 풍문이 자기 아이를 타국에 묻는 여인의 행동을 설명해 준다.
절제된 문장들로 이루어진 짧은 단편을 통해서 전성태는 오늘의 북한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포착해 보여주었다. 단편소설 양식이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단면을 그리되 그것이 포함된 전체라고 할 만한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찍이 많은 이들이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가리켜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 관한 총체적 진실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했던 것처럼, 우리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오늘의 북한 현실에 대해서 바로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편혜영 '시체들'/ 현대인 소외, 마법적 심연서 길어내
편혜영의 ‘시체들’은 현대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존재론적 소외 양상을 지극히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체들’에서 작가는 기발한 착상과 정교한 구성력 구성력만큼이나 현대라는 시대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 역시 단순하다. 부부가 함께 계곡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가 그만 아내를 잃어버린 사내가 있다.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사내는 아내 여부를 확인하려는 형사의 호출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막상 시신을 확인하려 할 때마다 사내는 그가 얼마나 자기 아내에 대해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된다. 편혜영 씨는 여기서 인간의 육체가 생명을 잃고 파편화한 양상들을 다각도로 묘사해 보여준다.
이 소설은 알레고리적인 독법을 필요로 한다. 사내와 그의 아내가 죽음을 당한 계곡은 삶을 해체시키는 현대사회의 그로테스크한 힘을 상징한다.
사내가 대면하게 되는 육체의 파편들은 아내의 것이라 해도, 다른 여인의 것이라 해도 좋다. 마지막 호출을 받고 달려간 사내 역시 계곡에 빠져 시신으로 화하게 되는데 이는 사내 역시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파편화된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현대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삶의 고유한 의미를 잃고 파편화하고 해체되는 현대인은, 저수지 같고 숲 같고 계곡 같은 마법적 심연 속에서 형체를 잃고 내던져져 있는 시신들과 같다. 삶 속에는 죽음이 서식한다. 편혜영은 삶의 마법적 심연을 포착할 줄 아는 작가다.
■ 정지아 '풍경'/ 역사의 뒤안길 인생 섬세하게 그려
정지아의 ‘풍경’은 흔히 빨치산 작가라는 세간의 별명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진면목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이다. 필자는 2004년 발간된 그의 창작집 ‘행복’이 사람들의 이목을 충분히 끌지 못하고 비평적 논의의 중심에서도 멀어졌던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지아는 이후에도 정진을 멈추지 않고 올해만 해도 벌써 ‘소멸’ ‘운명’ ‘풍경’ 같은, 두 자짜리 제목을 갖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빨치산의 딸’을 쓴 작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만치 인생의 깊은 묘리를 표착하고 표현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어 역사의식을 구비한 작가의 쓸쓸함과 무게감을 십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풍경’은 평생 어머니와 함께 평생 산중에서만 살아온 아들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다섯 명의 누이와 세 명의 형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고 이제는 어머니와 아들 둘뿐이다.
큰형과 작은형이 여수 14연대를 따라서 입산했다든가 하는 짧은 문장들은 이 2인 가족에 드리워진 역사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는 “영원처럼 느리게 그러나 쏜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라는 작중 문장이 말해주듯 시간속에 가로 놓인 인생의 의미다.
옛날 한국의 문호 김동인이 도도히 흐르는 대동강 물결과 배따라기로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늘 정지아는 소멸의 운명을 살아가는 인생의 풍경을 담담히 짚어나간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작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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