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상징 핵무기
우리나라와 핵무기,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로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 그날이 언제이든 한판 씨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다.
상대는 이미 핵무장을 했거나 충분한 핵 능력을 가졌다. 출렁이며 저만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 핵무기에 대한 각축을 바라본다. 핵무기에 대한 접근통로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나라, 시대에 합당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일까?
냉전시대 동안 한번도 핵무기가 사용된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 가공할 위력은 군사적 의미를 넘어 정치적 상징이 됐다. 만일 일본이 핵무장 국가였더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무난히 진입했을 것이라는 일본 일각에서 보이는 자탄은 국가나 인간이나 그 끝없는 욕망이 바로 비극의 시작임을 깨닫게 한다.
변화, 새로운 시작
냉전이 끝난 후 핵무기와 관련된 두 가지 변화의 흐름을 살펴보자.
첫째, 전략적 환경이 변했다. 소련의 붕괴, 바르샤바 동맹의 와해, 재래식 전력 면에서 견제 세력 없는 미국의 독주, 그리고 국제 테러조직을 포함한 비정부적 조직과 단체의 위협 증가 등으로 요약된다.
이 환경에는 미국이 보유한 대 규모의 핵 보복 능력에 합당한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 시리아 북한 그 어느 곳도 미국이 가진 장거리 대형 핵 무기를 사용할만한 표적이 아니다.
둘째, 군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핵무기로만 가능했던 군사 임무 대부분을 정밀유도무기 등 새로 개발된 재래식 전력으로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핵무기로도 어쩔 수 없는 목표물까지 등장했다. 핵무기의 용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미국에는 지하견고표적을 대상으로 미니 뉴크(Mini Nuke)등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적극 옹호하는 그룹이 있다. 그나마 21세기에 들어 핵무기의 사용을 검토해 볼만한 유일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핵무기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제한적으로 쓰자는 사람들과 아주 제한적으로 쓰자는 사람들간의 토론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현재 미국이 가진 핵 전력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의 핵 무기 프로그램이 폐기되면 미국의 핵 전력과 핵전략이 변할까?
미국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핵 탄두를 제거하고 일반 탄두를 장착하여 배치한다는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품고 있다. 실전에서 일반 탄도 미사일의 발사를 핵 공격으로 오인한 상대방이 핵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확산 핵 보유국이 핵무기와 그 우월적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핵확산을 방지할 수 없다. 인간 본성의 선함과 악함의 문제를 떠나 “나는 가질 자격이 있지만 너는 절대로 안 된다”는 논리를 보편 타당한 진리로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진보는 핵 물질만 손에 넣으면 아주 간단하게 핵무기 또는 ‘더러운 폭탄(Dirty Bomb)’을 제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인터넷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몇 시간만의 웹 서핑으로도 핵 무기 제조에 관한 기술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
테러리스트 그룹, 강대국에 강제로 편입된 소수민족이나 국가, 또는 특정 집단이 핵무기나 방사능 물질을 손에 넣는다면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그 치명적 무기들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절대적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라고 믿는 한 핵무기의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쯤에서 누가 끊을 수 있을 것인가?
핵 정글, 한반도 주변
정글에는 정글의 생존 방법이 있다. 사자 떼에게 쫓기던 동물들도 무리 중 몇 마리가 희생당하면 더 이상 멀리 도망가지 않고 유유히 풀을 뜯는다.
그러나 배불리 먹을 양보다 수십배 수백배를 탐하면서 쌓아 놓기를 좋아하는 인간을 만나면 아예 멀리멀리 도망간다. 인간의 사나운 모습에 몸서리 치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핵능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두 나라는 핵무기 감축 협정에 따라 최소한의 수량만 남기고 전략 핵무기의 숫자를 감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새로운 핵무기의 개발을 서두른다.
중국의 핵전력은 그 기술 수준으로 볼 때 미국의 전술 핵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0년대의 핵전력 정도로 파악된다. 중국은 비교적 소규모의 핵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영토와 이해관계에 치명적 손상을 주고 주변국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한 전력이다. 실제로 대만 해협에 배치된 미국 항공모함은 중국 핵 순항미사일의 격침위협 아래 있다. 중국의 핵전력은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보상하고, 미국 군사력의 치명적 취약점을 드러낸다.
중국의 핵전력 강화 계획에는 선행 개발단계에 있는 몇 가지 핵 무기 프로그램들, 특히 핵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신형 순항미사일, 지상발사 또는 해상발사 신형 탄도 미사일등이 포함돼 있다.
지상에서 운용하는 이동식 핵미사일 발사능력은 중국의 제한적 핵 전력의 생존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에 더하여 탄도 미사일 발사 잠수함의 개발로 중국 핵전력의 생존성은 획기적으로 증대되고 태평양 연안 곳곳에 군사력을 투사한다는 군사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제적 목표는 대만을 중국에 귀속 시키고, 남중국해까지 중국의 주권을 확장하여 국제무대에서 더욱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남중국해까지 확장한다는 것은 미국의 태평양 항로와 일본 한국 러시아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여 전략적 우세를 점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일본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핵 공격을 경험한 나라이다. 핵무기의 폐해 못지 않게 핵무기의 유용성, 그 전쟁결정력을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한 실질적으로 핵무장 국가의 대열에 즉시 합류할 수 있는 나라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에너지용이라는 명목으로 프랑스 등지에서 플루토늄을 위탁 재 처리하여 상당량을 비축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본 국내외에 보관중인 40톤을 비롯하여 재처리 중인 수량을 합치면 곧 65톤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게 되고, 료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에서만 앞으로 년간 7~8톤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게 된다.
플루토늄 5kg이면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다. 비록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으로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만일 그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든다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수량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통제의 끈을 미국이 쥐고 있는 날까지만 일본은 비핵국가일 것이다. 일본의 핵무장, 언제쯤일까?
우리의 대응 사실상 유럽은 핵무기에 관한 한 거의 현실적 위협이 없는 지역이다. 이곳에 IAEA 등 핵관련 국제기구의 본부가 위치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보장하고 주변 핵강대국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생각할 때,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을 보아가며 우리비무장지대 가까운곳에 이 국제기구의 본부를 유치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으리라본다.
핵기구 뿐 아니고, 유엔을 포함한 중요한국제평화 기구의 본부를 대대적으로 한반도에 유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우리가 핵무장으로 핵에 대응할 수는 없다.
인류의 파멸적 미래를 예견하면서 그 길에 같이 휩쓸릴 수는 없다. 핵에 관한 한 도덕적 우월성과 순수성을 유지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감정에 따라 너도 가졌으니 나도 가진다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가진 핵무기가 값비싼 장식물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핵무기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국들의 심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최소한의 전력으로 최대한의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무엇인가?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처럼 비대칭 전략, 비대칭 전력을 찾아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NPT 체제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윤석철객원기자 ys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